올해까지 5년 간 한국여자오픈 대회가 열린 충북 음성의 레인보우힐스CC 동코스 3번홀. 내년부터 한국여자오픈은 다른 골프장에서 열리기로 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DB

올 한해 프로골프 대회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여자골프대회(KLPGA) 역시 2025년 마지막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대회는 10월 30일부터 3일간 제주도에서 열리는 ‘S-oil 챔피언십’이다. 올해는 지난 10월 둘째주 열린 ‘놀부·화이 여자오픈’이 새롭게 대회에 포함돼 지난해 30개에서 31개로 늘었다.

30여개 대회 가운데 선수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고, 갤러리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대회는 단연 내셔널타이틀이 걸려있는 ‘한국여자오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대회와 달리 유독 이 대회만 대한골프협회가 주최하기 때문에 메이저 중의 메이저란 별명이 따라붙는다.

특히 지난 5년 간 이 대회는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레인보우힐스CC에서 열렸는데, 대회 때마다 이변이 속출하고 체력이 달리거나 중간 성적이 나빠서 중도에 포기하는 선수가 가장 많은 대회라는 악명 높은 대회로 명성을 떨쳐왔다.

2025년 대회에서만 16명의 선수가 중도에 포기를 했고, 2024년에는 무려 20여 명이 중간에 집으로 갔다. 체력적인 부담을 이유로 들지만 한 라운드에 10오버파 이상 선수들이 속출하면서 완주할 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5년 간 한국여자오픈은 DB그룹이 후원했는데, DB그룹의 골프장인 레인보우힐스CC는 깊은 러프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코스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는 다른 골프장에 비해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되고 코스 자체가 까다로워 돌발 변수가 많은 골프장이어서 골퍼들의 민원이 많기로도 유명했다.

당초 5년 계약기간 후 DB그룹에서는 재연장을 원했지만 대한골프협회가 선수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내년부터는 다른 골프장에서 한국여자오픈이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DB그룹은 한국여자오픈과 다른 대회를 새롭게 만들어 내년 4월 DB손보 프로미 오픈 일정 다음주 DB그룹 여자골프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한국여자오픈이 어느 골프장에서 열릴 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레인보우힐스CC에서 보여준 짜릿함과는 다른 평범한 장면이 연출 될 까 벌써부터 아쉬움이 생긴다.

우리나라 여자 골프는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 25년 간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았다. 박세리 키즈까지 등장하면서, 박인비, 고진영 등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장기간 차지해 LPGA 상위 10위 이내에 한 때는 5명까지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시장을 호령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인의 끈질긴 노력과 강한 정신력 그리고 서양 선수들에 비해 체구는 작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큼만 성적을 내도 상금을 챙길 수 있게 되다 보니 정신적으로 느슨해진 것일 까? 힘들고 변수가 많은 골프장에서 중간에 포기하면서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을 쉽게 보이고 있다.

경쟁력에서 점차 밀리다 보니 LPGA 10위 안에 김효주 선수가 간신히 8위에 이름을 올릴 뿐 20위 이내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편하게 골퍼 생활을 해도 주머니를 채울 수 있으니 굳이 힘든 곳에서 나쁜 성적을 받는 것을 꺼리게 된 것이다. 어려움을 기피하다 보니 정신력도 체력도 떨어지면서 실력이 밀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우리나라 선수 대신 일본과 태국의 선수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 랭킹 1위는 태국의 지노 티티꾼이고, 2025년 신인왕 점수는 10월 현재 일본의 야마시타 미유가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역시 일본 선수들이 4위까지 차지하고 있다. 5위에는 중국의 미란다 왕 선수가 랭크돼있다.

한국의 윤이나는 순위는 커녕 내년 풀시드 대상에서도 쫓겨날 판이다. 80위 내에 들어야 하는데 아슬아슬한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우리나라 여자골프가 세계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인보우힐스CC의 어려움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체력과 정신력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KLPGA가 출범한 1988년에는 8개 대회에 상금은 연간 총 8440만원이었다. 박세리 선수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투혼으로 우승해 IMF 고통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을 위로해준 1998년까지만해도 우리나라는 7개 대회에 총 상금 7억8000만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회 수도 크게 늘고 상금 규모도 늘어 2025년 31개 대회에 총 상금도 326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 이외에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로서 세계 3대 여자프로골프 리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회 별 우승상금 규모도 늘어나 메이저급은 3억원대이고 일반 대회도 1억원을 훌쩍 넘는다.

골프산업도 성장해 대회 이외의 수입원이 크게 늘어났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대회에 목을 맬 절실함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도전정신은 점차 시들해지고 계산기 두드리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부터 레인보우힐스CC에서 한국여자오픈이 아닌 다른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드라마틱한 장면들이야 계속 볼 수 있겠지만, 한국여자오픈이 선수들의 민원에 의해 다른 골프장에서 열리게 됐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나라 골퍼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입맛이 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없어지고 감탄고토(甘呑苦吐)만 남은 것 같은 꺼림직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