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전세라고 하면 민법상 물권인 전세권과는 다른 채권으로서의 임대차를 의미하고 조선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주택 임대차 개념이다.

그동안 전세는 매월 임대료를 내는 월세 보다는 임차인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전세를 사다리로 해서 목돈을 모아 내집을 마련하는 주거사다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집주인인 임대인에게는 사금융적 성격이 강해 1970년대와 1980년초까지의 고금리시기에는 월세보다 보증금 운용수익이 높았고, 받은 보증금을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저금리 시기에는 전세대출이 전세를 계속 유지하게 만들었고, 서민들은 전세를 갭투자를 통한 내집마련 수단으로도 활용하였다. 이러한 전세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세사기와 전세금이 갭투자를 통한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지금은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고 일각에서는 전세의 종말을 논하기도 한다.

민간임대시장의 전세사기는 '갭투자'의 악용, 부동산가격의 하락, 신축빌라의 매매가격보다 높은 전세가격, 이중계약 등 여러 원인이 있고, 특히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제도는 여전히 민간 임대주택의 중요한 공급 통로이고, 아직도 서민들은 월세보다 전세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전세제도가 공공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은 2005년 국토부에 의해 전세임대주택이 공급되었고, 2007년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가 그 기원일 것이다.

전세임대는 GH, LH, S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입주자가 원하는 주택의 소유주와 직접 전세 계약을 맺고, 그 주택을 입주자에게 저렴하게 재임대해 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입주자는 주택 소유주와 직접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주택사업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게 된다.

법령상 전세임대주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나 주택도시기금의 자금을 지원받아 기존주택을 임차하여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등 저소득층과 청년 및 신혼부부 등에게 전대(轉貸)하는 공공임대주택(공공주택특별법 시행형 제2조 1항 7호)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입주자격은 무주택자로서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 월평균소득 이하(1인 70%, 2인 60%, 그밖의 경우 50%)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거주기간은 2년이나 요건을 충족하면 재계약을 14회까지 가능하여 최장 30년까지 거주 가능하다.

전세임대주택은 여타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본인이 원하는 지역의 민간주택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임차인 입장에서는 직주근접의 주택을 구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장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있음에도 소득기준과 지원금액 제한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대부분 전세대출을 통해 민간 전세주택을 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전세임대는 먼저 살 집을 구하고, GH 등에 신청을 하면 G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임차인은 다시 GH와 일종의 전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이다. 이때 전세금은 GH(주택도시기금)가 95%를 부담하고, 임차인은 5%만 부담하게 된다. 물론 임차인은 95%의 금액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게 된다.

이에 비해 전세대출은 임차인이 집을 구하고, 그 집을 구한 계약서를 들고 은행에 가서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아 임대인에게 주게 된다. 따라서 임대인이 문제가 생기면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없게 된다.

가계대출은 거시경제 관점의 운용과 통화정책과의 연계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도 국토부가 주택도시기금과 같이 DSR이 배제된 정책대출을 과도하게 공급한다거나, 전세대출의 20~30%를 시장에 공급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225조원의 질문,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시대_ 주택도시기금의 역할, 백두진, 75p).

주택도시기금은 전세임대주택에 연간 4조원 정도를 사용하는데 반해, 임차인이 빚을 지는 직접 대출방식(버팀목 대출)은 연간 약 10조원을 집행한다. 주택도시기금이 서민들에게 전세자금을 직접 대출하면 가계부채는 그만큼 늘어난다. 반면, 전세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전세보증금을 지원하는 경우 가계부채는 증가하지 않는다.(백두진, 88p)

현재와 같이 시중의 전세대출 20%정도를 공적자금인 주택도시기금이 직접 공급하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부작용이 큰 직접 대출을 축소하고 임차인에게 유리한 전세임대주택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하는 것이다(백두진, 89p).

대한민국의 주택수는 2,200만호(국토부 주택보급률지표상, 통계청자료1,987만호) 정도 되고 가구수는 2,207만이다.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245만 가구이고, 무주택 가구수는 962만가구로 전체 가구의 43.6%를 차지한다. 주택을 소유한 가구중 2주택 이상을 소유한 가구는 324만 가구이다. 1주택만 소유한 가구수는 1,245만-324만=921만가구가 된다.

그러면 전체주택수 - (1주택소유가구수+2주택이상소유가구수) = 초과 또는 잉여소유주택이 된다. 즉, 2,200만-(921만+324만)=955만호의 주택은 잉여 주택이다. 주택 수의 약 43%는 투자 또는 투기의 수단으로 이른바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 주택분배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955만호의 잉여주택 중 일부만이라도 전세임대로 돌릴 수 있다면 공공임대주택의 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도 이야기 했지만 주택의 공급보다는 주택의 분배가 더 큰 문제이다.

입주자격을 무주택자이기만 하면 되고 전세임대금액을 현행 수도권 1.3억, 광역시 0.9억, 기타 0.7억인 기준보다 보다 올려 본인부담 비중을 좀 높이고, 전세임대주택을 기본임대주택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신규 공공임대주택 공급대책에 골몰할 필요도 없다.

또한 주택도시기금으로 전세임대주택 보증금을 대폭 지원한다면 공공임대주택 20%시대는 급속히 빨라질 지도 모른다. 공공임대주택이 20%가 된다면 임대주택이 주택시장의 가격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민간의 전세 영역을 공공의 영역으로 편입하면 전세사기 등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45세 이하 청장년층이 분양주택보다는 공공임대주택을 원한다고 대부분 손을 든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2025.9.19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 서울). 그러나 만약 이들이 공공임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소득이하의 소득과 재산, 청약저축, 자동차 소유 자격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대부분 좌절하게 될 것이다.

쌓아온 청약자격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기존 청약자격 및 절차는 유지하면서 무주택이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도록 기본주택형 전세임대주택을 도입하는 투트랙의 임대주택 공급 절차를 마련한다면 주택 분배를 통한 주택공급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세임대주택이 '빵공장'의 빵은 아니더라도 『빵창고』의 빵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