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파업 현장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0일도 채 되지 않아 국내 대표적인 제조기업인 현대자동차와 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지난 3일 같은 날 동시 파업에 들어가면서 산업계에 노란봉투법 공포가 몰아닥친 분위기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3조 개정법률안’은 그동안 산업계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 단독으로 지난 8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6개월 후인 내년 2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시행일을 6개월이나 남겨뒀는데 벌써부터 국내에서 가장 강성 노조인 현대차 노조가 7년 만에 파업에 들어간 것은 분명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파업을 벌였던 HD현대중공업 노조도 현대차 노조와 같은 날 파업을 벌인 것 역시 노조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전체 노조의 연대 파업을 예고하는 느낌을 줘 산업계 전체를 긴장시키는 분위기다.

이번 파업은 총 파업이 아닌 일종의 맛보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직후의 파업이란 의미가 크다. 두 회사 모두 3일 파업에 들어가 5일까지 3일간 하루 4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이지만 임금인상 및 상여금 인상 요구에 더해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나아가서 경영현안에까지 개입하고 있어 협상이 쉽사리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현대차와 HD현대중공업이 연대 파업을 벌인 시점은 교묘하게도 이재명 정부가 2026년 정부 예산을 올해 예산보다 8.1%나 늘린 728조원이라는 슈퍼예산을 편성 발표한 시점과 맞물린다.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더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 국가 부채가 처음으로 GDP대비 50%를 넘기게 돼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국가부채 리스크에 노출되는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노란봉투법 통과에 맞춘 노조 파업의 의미가 마치 한국 경제가 어둡고 긴 터널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생산 인구가 늘어나거나, 기업이 돈을 더 벌어들여 정부의 곳간을 채우는 것인데, 인구는 줄어드는 가운데 기업의 경영 환경이 더 어려워지면 생산이 줄고 그에 따라 세수도 줄어들게 되면서 현재 국가부도를 걱정해야 하는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시기적으로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다. 노란봉투법을 만들어 기업 경영 환경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는 내년 슈퍼예산을 짰다는 것 자체가 빚내서 정치하겠다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슈퍼예산을 편성할 생각이라면 노란봉투법 같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법을 만들지 말든지 노란봉투법을 만들려면 예산이라도 긴축으로 편성하든지 했어야 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명분에 경영자와의 권리 분쟁도 대상에 집어넣었는데 이미 경영자의 고유 영역인 경영적 판단에까지 노조가 침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의 노동쟁의 이유들을 보면 현대자동차는 신사업 및 해외조립공장 사전협의를 요구하고 있고, HD현대중공업은 HD현대미포와의 합병 반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GM은 직영정비소 폐쇄 철회를, 현대제철은 하청노조의 직접교섭요구, SK에코플랜트는 하청업체 노조원 채용 요구, 네이버는 6개 자회사 노조 원청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이 사용자의 범위 확대와 기업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그리고 경영 관련 권리 주체의 모호함으로 인한 갈등 확대라고 할 수 있는데, 벌써부터 대기업 노조들이 이런 주장을 하면서 쟁의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 간에 단체교섭을 직접 하게 되면서 하청사업자가 하청노동자를 콘트롤할 수 없고, 원청사는 하청노동자의 고용까지 책임져야 한다. 회사의 매출이 줄어도 구조조정을 할 수 없고 하청과의 계약도 파기하기 어렵게 된다.

하청사업자는 고사하고 원청사 자체적으로도 사업이나 인원 구조조정을 할 때마다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도 하청노동자의 주장도 반영해야 할 판이다.

파업에 따라 발생한 기업의 피해에 대해서도 개별 책임소재를 따져 책임을 지우도록 했는데, 사실상 불가능해 민법 760조가 정한 피해자 보호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노조의 권한 범위를 늘려놓으면서 안그래도 파업이 많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년 내내 노조 파업과 시비에 시달리게 됐다.

국제노동기구(ILO)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간 임금근로자 1000명 당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우리나라가 38.8일로 일본의 0.2일 대비 194.0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8.6일의 4.5배, 독일 8.5일의 4.6배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지 사흘 후인 지난달 27일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가 외국인 투자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35.6%가 ‘투자 축소 또는 한국 지사 철수를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시행 6개월을 남겨놓고 벌써부터 문제점이 노출되다 보니 여권에서는 시행 시기를 1년 늦추자는 얘기도 나오고, 정부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가이드를 정해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협의에 들어갔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미 법이 통과했고 시행만 남겨놨기 때문에 그런 땜질식 대응은 늦었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 경영의 칼자루는 노조가 갖게 됐고, 노조위원장의 권한이 경영최고책임자 위에 서게 됐다.

앞으로 노조와 협상을 할 때마다 원가가 올라가고, 경영위기가 와도 구조조정은 고사하고 매각도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앞으로 어린아이들 꿈을 물어보면 ‘노조 간부’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생산하고, 창조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람들이 주체가 돼도 살아날까 말까 하는 세상에 발목 잡고, 시비걸고, 파괴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등에 엎고 세상을 지배한다면 누가 기업을 하려고 하겠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많은 리스크에 노출돼있지만, 단연 가장 큰 리스크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누렇게 말라버릴 우리나라 기업생태계가 이닐까?

나 같아도 기업 대표이사보다 노조 간부가 되겠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