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여론조사업체가 조사한 대선 3자 대결 시의 가상 지지율 결과(참고용)

이전 기사에서 소개한 '공정성 규범(Norm of Even-Handedness)'은 단순한 가설이 아닙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심리적 원칙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과학적 연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현상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일관되게 나타나는지, 다양한 실험 데이터를 통해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확인된 공정성 효과

제2차 세계대전 중 군 입대 허용 실험(1944년)

전쟁 중이던 1944년, 미국인들에게 자국민이 외국 군대에 입대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A그룹 (연합군 질문 → 독일군 질문)

- 연합군(영국/프랑스) 입대 허용: 49% 찬성

- 독일군 입대 허용: 23% 찬성

- 차이: 26%포인트

B그룹 (독일군 질문 → 연합군 질문)

- 독일군 입대 허용: 34% 찬성

- 연합군(영국/프랑스) 입대 허용: 43% 찬성

- 차이: 9%포인트

적국인 독일군 입대 허용 찬성률이 23%에서 34%로 11%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이 결과는 앞서 살펴본 미국-러시아 기자 취재 사례와 마찬가지로, 질문 순서에 따라 의견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일본 무역제한 실험(1982년)

경제적 경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일본의 무역 제한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습니다:

A그룹 (미국 제한 질문 → 일본 제한 질문)

- 미국의 일본 제품 수입 제한: 76% 찬성

- 일본의 미국 제품 수입 제한: 48% 찬성

- 차이: 28%포인트

B그룹 (일본 제한 질문 → 미국 제한 질문)

- 일본의 미국 제품 수입 제한: 70% 찬성

- 미국의 일본 제품 수입 제한: 71% 찬성

- 차이: 1%포인트

일본의 수입 제한 허용에 대한 찬성률이 48%에서 70%로 22%포인트 급증했습니다. 이는 국제 무역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도 공정성 규범이 강력하게 작용함을 보여줍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패턴: 공정성 규범의 작동 원리

슈만과 루드비히(1983)의 연구는 과학적으로 매우 엄격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응답자들을 두 집단으로 무작위 배정한 후, 각 집단에게 동일한 질문을 다른 순서로 제시했습니다(분할표본(Split-ballot) 실험설계). 또 4개의 과거 실험 데이터를 재분석했으며, 1982년 2월 전국 전화 설문조사 데이터(419명)와 1947년 갤럽 조사 데이터 등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방법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닌 질문 순서와 응답 변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모든 실험에서 명확한 패턴이 드러납니다.

- 첫 번째 질문에서는 자국/자기집단 선호 경향이 강함

- 두 번째 질문에서는 '공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낌

- 결과적으로 두 입장 간 차이가 크게 축소됨

특히 주목할 점은 처음에 덜 선호되었던 선택지(예: 러시아 기자, 독일군 입대, 사업주 권리)가 순서 변경 후 더 큰 증가폭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육 수준에 따른 차이: 누가 더 영향받을까?

슈만과 루드비히(1983)의 연구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질문 순서에 더 크게 영향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 고학력층: 자신의 기존 견해를 견지하는 경향이 강함

- 저학력층: 공정성 규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음

이는 정보 처리 능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의견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질문 순서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도구지만, 맹목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 순서와 맥락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현대 시민에게 필수적입니다.

독립신문

<참고문헌>

Schuman, H., & Ludwig, J. (1983). The Norm of Even-Handedness in Surveys as in Life.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8(1), 112-120

Bishop, G. F., Oldendick, R. W., & Tuchfarber, A. J. (1982). Political information processing: Question order and context effects. Political Behavior, 4(2), 177-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