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승인으로 국적기 독점체제에 들어서자마자 당초 약속을 어기는 일련의 행보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정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승인해준 지난해 12월 당시 우려했던 사태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국적항공사를 독점체제로 만들어준 지난 정부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진다고, 지금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의 행동을 보면 딱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엎어진 물인 듯 해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나서서 대한항공이 독점적 위치에서 고객을 호갱으로 보고 부리는 횡포를 막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승인을 내줘서 독점기업을 만들었으니 오롯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을 품을 때 했던 약속 중 독점 기업으로서 횡포를 부려 고객을 불리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약속 내용은 크게 운임 인상 제한, 좌석수 축소 금지, 마일리지 축소 금지 등으로 2019년 수준에서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약속 내용이다.

그런데 조 회장은 이 세가지 약속을 하나하나 어기고,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소위 도박장에서 따고 배짱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약속한 위의 3가지 항목을 향후 10년 간인 2034년까지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합병 승인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꼼수를 부리면서 어기고 있어 앞으로 대한항공을 과연 국적기라고 해야할 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고 있다.

우선 조 회장은 첫번째로 지난 8월 3일 운임인상 제한 약속을 어겨 공정위로부터 121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 받고 아시아나항공은 검찰에 고발 당하게 됐다.

조 회장은 인수한 아시아나 항공에 대해 지난 1분기 인천-바르셀로나(비즈니스석), 인천-프랑크푸르트(비즈니스석), 인천-로마(비즈니스석), 광주-제주(일반석) 등 4개 노선 평균운임 인상 한도를 최대 28.2%까지 초과해 올렸다. 아시아나항공이 운임 초과인상으로 거둬들인 돈은 6억8000만원이었다.

올해 1분기라고 하면 지난해 12월 합병 승인한 직후인데, 조 회장은 무엇이 급했는지 말 그대로 종이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어긴 것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음으로 좌석수에도 손을 댔다. 최근 대한항공은 프리미엄석을 새롭게 내놨는데,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중간 급에 해당된다. 이코노미석 구간에 설치가 되는데 가격은 이코노미보다 10% 더 받는 대신 앞자리와의 간격을 17cm 넓히고 의자 폭은 4cm 더 늘리기로 했다. 문제는 기존의 이코노미석의 운임은 그대로인데 좌석 폭을 3cm씩 줄여, 현재 좌석 배열을 3-3-3에서 3-4-3으로 한 줄을 더 만들면서 비행기 총 좌석수를 291개에서 328개로 37석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소 빈자리가 많은 일등석은 아예 없애고 비즈니스석도 16개 줄이기로 했다. 꽉꽉 차는 이코노미석을 닭장으로 만들어 수를 늘리고, 이코노미석 폭 줄인 것으로 프리미엄석이라는 요상한 것을 만들어서 10%씩 운임을 더 받아 주머니를 채우겠다는 꼼수를 부렸다.

세번째 마일리지 꼼수는 당초 대한항공 마일리지와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에 대해 1.5대1의 합병 비율을 추진하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최근 수정해 공정위에 최종안을 제출했지만 일단 반려된 상태로 알려졌다.

양 항공사 마일리지 합병 비율은 1대 1로 조정했지만, 신용카드 실적 마일리지에서 3대 2의 비율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장기 고객에게는 결국 불리한 조건이 된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적립 제휴사도 줄이고 있다. 지난 6월부터 11번가,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알라딘, 옥션, 지마켓, 굿데이플라워와의 적립 제휴가 종료됐다.

마일리지와 관련해서는 마일리지 유효기간제 등으로 인해 고객들의 마일리지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가 최종 합병 승인을 하기 위해서 남아있는 마지막 관문인 마일리지 합병을 두고 고민에 빠진 이유 역시 조 회장이 독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국적기 독점체제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조 회장이 고객을 상대로 횡포를 부리고 있지만, 실제 조 회장은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다.

즉 고객인 국민의 민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자칫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회사를 남의 손에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구조를 보면, 조원태 회장 등 8인이 19.96%이고,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이 14.90%, 한국산업은행이 10.58%로 총 총 45.44%이고, 잠재적인 경영권 싸움 대상인 호반그룹이 18.46%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로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산업은행의 보유지분이 어느 편에 설지에 변수가 생겼다. 산업은행이 조 회장 측에 반기를 들고 호반 측에 서거나 호반 우호세력에게 지분을 넘길 경우 호반 측은 29.04%로 올라가고, 조 회장 측은 34.86%가 된다.

현재 한진칼의 지분 중 9%를 두 개의 사모펀드가 가지고 있는데, 이 경우 이 사모펀드의 의사결정에 따라 경영권이 뒤집어질 수도 있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을 먹고 국내 항공 독점구도를 만들었다고, 고객을 무시하고 오만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민심이 돌아서면 나라님도 바꾸는데 합병 승인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온갖 꼼수로 주머니 채울 생각만 하니, 앞으로 또 어떤 꼼수로 고객의 다리에 쥐가 나게 하면서 주머니를 채울 지 심히 걱정이 된다. 결국 이런 독점적인 구도를 만들어 국민을 힘들게 만든 정부가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이 독점적 횡포다. 구글이 현재 유럽에서 반독점법에 걸려 소송에 패소했고, 과거 미국의 투자은행업계를 독점적으로 지배했던 제이피모건이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아 투자 부분을 떼 내 모건스탠리로 분사시킨 적이 있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미국 빅테크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반독점법 저촉이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반독점법일 정도다.

자유시장경제의 경쟁구도를 무너트리고 건전한 경제질서를 해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독점구조이다. 독점은 사회주의에서나 있는 구조이고,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절대로 독점구조를 허용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정부는 하늘을 책임지는 항공사업에 독점구조를 만들어준 것이다. 두고두고 말썽을 부릴 것이고, 국민만 볼모가 되게 생겼다.

그나마 상법개정안 3%룰이 적용되면 감사위원 추천에서 독점적인 권한 행사가 어려워져 다소나마 견제장치가 생길 가능성이 있겠지만, 정부가 근본적으로 독점구조 해소에 나서주길 바랄 뿐이다. 조 회장의 행보를 보면 좋은 말로 해서는 안 통할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