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당시 대한민국 맹호부대 군인들
2016년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후 첫 행사는 6월 6일 현충원 참배였다. 나는 당시 국민의당 최고위원이어서 현충일 행사에 갔었는데, 국방위원장 외에 국회의원은 거의 오지 않았다. 국가보훈처장이 개회사를 하는데 독립투사로 시작해서 6.25 전사자 그리고 서해 교전 전사자 등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사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우리와 교류가 많은 베트남 정부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라고 한다.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하더라도 전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호응해서 무덥고 위험한 먼 나라에서 전쟁을 치렀다. 베트남에 파견되었던 우리 군 5,000 여 명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베트남 정부를 불편하게 할까봐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장병들을 현충일에 추모하지 못한다는 것이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는 이제 70대 중반에서 80대에 이르는 노년에 이르렀다. 우리는 현충일 행사에서조차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버림 받고 있으나 미국은 현충일(Memorial Day)이면 이제는 노인이 된 참전용사들이 추모의 벽(The Wall)을 찾아서 먼저 떠난 전우의 이름을 찾아보고 또 그 자리에서 몇 십 년 만에 전우를 만나기도 한다. 베트남에 참전했던 부대나 직군별로 사이트를 만들어서 소식을 전하고 먼저 떠난 전우를 생각하며 지난날을 회고하곤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소회를 유튜브로 만들어서 올려놓았고 그 중에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도 많이 있다.
메모리얼 데이와 현충일을 맞아 유튜브를 훑어 보다가 헬기 조종사로 베트남에 참전했던 노병이 2년 전에 만들어 올린 영상이 무척 감동적이어서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영상을 만든 사람은 미 육군 준위(CWO)로 베트남에서 1968년 6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사이공 외곽 비엔호아 기지에 근무했던 로버트 크레인으로, 그곳에 주둔했던 제68 공격헬기 중대(68th Assault Helicopter Company) 소속으로 Top Tiger 39 헬기를 조종했다. 그는 다행히 무사히 베트남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사업을 하다가 은퇴했다. 노년의 그는 자신의 UH-1 헬기로 실어 나른 젊은 보병(Grunts, Infantrymen)들에 대한 추억을 담고, 이제 노년이 된 참전용사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튜브에 담았다.
로버트 크레인은 베트남에서 자신의 UH-1 헬기로 18~20세 앳된 젊은 보병을 전투지에 태우고 가면 이 젊은 병사들은 헬기에서 죽음의 덫인 밀림과 논두렁으로 뛰어 내려갔다면서, 이들이야 말로 가장 용감한 군인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전투를 금방 치른 병사들은 헬기가 착륙하면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려 왔고, 헬기 승조장이 이들의 팔을 힘껏 잡아서 헬기에 태웠다. 조종사인 크레인이 뒤를 잠시 돌아보자 한 젊은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이 병사는 크레인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Thank you, Sir"라고 했다. 크레인은 ”You are welcome, soldier"라고 답했다. 그 때 어느 병사가 “우리는 여기를 벗어나야 해"라고 크게 외쳤다. 헬기가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자 탑승한 병사들은 기지로 무사히 돌아간다고 안도했고 그렇게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이다. 베트남 근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무사히 귀환한 크레인은 자기와 눈이 마주쳤던 그 젊은 병사가 무사하게 귀국해서 세상을 보았을까 하고 평생 동안 생각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크레인은 역사가들이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자신은 개의치 않으며, 중요한 바는 자기가 그곳(베트남)에 있었고 그것(전쟁)을 보았다는 사실이라면서, 늙고 완고한 노인이 되어 있는 베트남 참전 용사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전쟁은 ‘헬기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헬기의 역할이 컸다. 베트남 전쟁 10년 동안 미군 헬기 12,000대가 투입됐는데, 그 중 5,000대가 피격되거나 사고 등으로 상실됐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 미 육군은 헬기 조종사 학교를 만들어서 조종사를 양성했다. 이들은 휴이(Huey)라고 부르는 UH-1 헬기, 코브라 공격헬기, 치누크 등을 조종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많이 활약한 헬기는 UH-1 휴이로, 병력 수송은 물론이고 부상병 운송, 탄약 물자 운송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됐다. 휴이에는 무장이 없었으나 공산군의 저격에 취약함이 드러나자 양쪽 문에 M60 기관총을 장착했다. 나중에는 로켓과 벌컨포를 장착하기도 했으나 M60가 기본 병기였다. 헬기는 작전 지역에 착륙해서 병력을 내려놓을 때와 병력과 부상병을 싣고 이륙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사수는 이 때 보병을 보호하기 위해 엄호사격을 하는데, 조종사와 달리 사수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피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미군 헬기 조종사와 승조원은 총 10만 명에 이르며, 조종사의 경우 8명 중 한 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어 거너(Door gunner)라고 부르는 M60 사수(射手)의 전사율은 조종사 보다 훨씬 높았다. 사수는 공산군 저격수의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UH-1 휴이 헬기는 조종사, 부조종사, 사수(射手) 외에 크루 치프(Crew Chief)라고 불리는 승조장(乘組長)이 탑승한다. 승조장은 사병인데, 헬기에 탑승한 인원과 물자를 책임지며 평소에는 헬기 상태를 관리한다. 조종사와 승조장은 팀을 이루어서 자신들의 헬기에 탑승하지만 부조종사와 사수는 출동할 때 그들이 탈 헬기를 배정 받는다. 헬기 중대장은 항공장교인 소령이나 대위가 맡았다.
헬기 승조원은 보병처럼 정글이나 늪지대를 누비거나 논 두렁에 매복하거나 순찰하는 경우는 없지만 헬기 조종사와 승조원들의 전사율은 보병과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군은 5만 8,000여명이고 그 중 전사자가 4만 명이며 사고와 부상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 4천명인데, 헬기 조종사 2002명과 헬기 승조원 2704명이 전사하거나 사고로 사망했다. 베트남 전쟁 미군 전사/사망자 중 약 10%가 헬기 조종사와 승조원이며, 헬기 사수의 전사율이 특히 높았다. 치열한 전투가 있는 날에는 사수가 연이어서 전사하는 바람에 헬기에 태울 사수를 못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세대(the Great Generation)의 자식들인 부머 세대(Boomer generation)는 베트남에서 너무나 큰 희생을 치렀다. 전쟁에 대한 평가나 책임론은 이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따라 희생을 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와 전사자에 대한 존경이 없다는 것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