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제도하에서는 법관이 위헌•위법 행위를 했더라도, 국회가 정파적 이유로 탄핵소추에 소극적인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임성근 판사 탄핵 전까지 단 한 번도 법관 탄핵소추가 본회의에서 가결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법관 탄핵제도는 법관 독립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이지만, 그동안 우리 국회는 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이제 법관 탄핵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주권의 실현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행 법관 탄핵제도의 한계
현행 헌법 제65조는 국회 의결을 거쳐야만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지만, 이러한 독점적 탄핵소추권이 국민의 의사와 괴리된 채 행사되거나 오히려 방기되는 문제가 발생해 왔다.
또 현행 제도하에서는 법관이 위헌•위법 행위를 했더라도, 국회가 정파적 이유로 탄핵소추에 소극적인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임성근 판사 탄핵 전까지 단 한 번도 법관 탄핵소추가 본회의에서 가결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국민청원법 개정을 통한 국민 참여 확대
● 법관 탄핵소추에 대한 국민청원권 보장
헌법 제26조는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청원법은 그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청원법은 법관 탄핵소추에 관한 국민청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앞선 글에서 일본의 사례를 통해 국민이 직접 법관 탄핵소추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일본의 탄핵소추위원회가 국민 청구를 심사하여 최종 소추 여부를 결정하듯이, 우리도 국민이 법관 탄핵을 청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청원법 제4조(청원사항)에 "헌법•법률을 위배한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의 요구"라는 항목을 신설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청원법 체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국민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
개정안: 청원법 제5조(청원사항).
1. 피해의 구제
2.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이나 징계의 요구
3. 헌법•법률을 위배한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의 요구 <신설>
4.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5.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6. 그 밖에 국가기관 등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
청원 요건의 합리적 설정
법관 신분의 중요성과 탄핵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무분별한 청원을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요건 설정도 필요하다. 국회법 제123조는 "국회규칙으로 정하는 일정한 수 이상의 국민의 동의"를 청원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관 탄핵소추 청원에 대해서는 일반 청원보다 높은 수준의 동의 요건을 설정하는 등 균형 잡힌 접근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법관 독립 보장과 국민 통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국회법 개정을 통한 탄핵소추 절차 개선
● 법관 탄핵소추 청원에 대한 심사 의무화
현행 국회법은 법관 탄핵소추 청원에 관한 구체적인 심사 절차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법에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청원에 대한 위원회의 심사" 조항을 신설하여, 법제사법위원회가 일정 요건을 갖춘 법관 탄핵 청원을 의무적으로 심사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법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한 위원회 심사 절차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법관 탄핵소추 청원에 대한 심사 절차를 국회법에 신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법관탄핵소추위원회 설치 검토
일본의 탄핵소추위원회처럼 법관 탄핵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제사법위원회가 법관 탄핵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만, 위원회의 다양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탄핵소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국회법을 개정하여 '법관탄핵소추특별위원회'를 상설하거나 필요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효과적일 수 있다. 위원회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법관의 위헌•위법 행위를 객관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법관 탄핵 사유의 구체화 및 명확화
● 탄핵소추 사유의 명확한 기준 설정
헌법 제65조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를 탄핵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들은 탄핵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법관 탄핵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유를 명확하게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침해하는 행위
- 법관 신분을 이용한 부당한 이익 추구
- 법관으로서의 위신을 현저하게 손상시키는 행위
- 직무상 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거나 직무를 심히 태만히 한 경우
이와 같은 구체적 사유를 법률로 명시함으로써 탄핵제도의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주권 원리 실현을 위한 탄핵제도 개선
법관 탄핵제도는 단순히 개별 법관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를 넘어, 국민주권 원리의 실현과 직결되는 헌법적 장치다. 국민이 사법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지금까지 제안한 국민청원법과 국회법 개정 방안은 국회의 독점적 탄핵소추권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법관 탄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만 내서는 사법 권력에 대한 국민 통제는 어렵게 된다. 탄핵 제도가 권력남용을 예방하고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들에 대한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법관 독립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법권력 통제의 길을 열어가야 할 때다.
독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