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일보는 "'정치 판사'들이 민주당과 협공… 양승태 대법원도 그렇게 무너뜨렸다"라는 기사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개최와 관련해 마치 일부 판사들과 민주당이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 기사는 법관대표회의의 본질과 사법부 독립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정치적 행동'이 아닌 사법부 내부의 자정 장치
조선일보는 법관대표회의가 특정 재판의 판결을 논의하는 것을 재판 독립 침해이자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이 사법행정과 법관 독립에 관해 의견을 표명하는 공식 회의체로, 사법부 내부의 자정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다.
이번 회의의 소집 배경도 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과 사법 신뢰 훼손 문제를 논의하자는 다수 판사들의 요청에서 비롯됐다. 이는 특정 정치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법부 신뢰와 독립을 지키기 위한 내부 성찰의 과정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른 양심적 판단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정치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정치적 공세'로 몰아가는 것이 오히려 사법 독립을 위협
조선일보는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이번 사안을 동일선상에 놓고, 일부 판사와 민주당이 협공해 사법부를 흔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재판거래,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위헌•위법 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한 심각한 사건이었으며, 이는 법원 내부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법관대표회의는 법원 내부의 문제 제기와 자정 노력의 일환이었다. 오히려 언론이 사법부 내부 논의를 정치적 공세로 몰아가거나, 특정 판사들의 문제 제기를 정치 행위로 매도하는 것이 사법부 독립을 더 위협하는 행위다. 사법부의 독립은 내부의 다양한 의견 표출과 논의를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법관대표회의의 논의 주제는 균형적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은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정치적 중립과 사법 신뢰를 무너뜨렸는지, 민주당의 대법원장•법관 탄핵 등 시도가 재판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지 등 양측 모두의 쟁점을 다루고 있다. 이는 특정 정파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 신뢰와 독립을 위한 균형 잡힌 논의임을 보여준다. 법관대표회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균형 잡힌 토론의 장이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 청문회•특검 추진, 법원노조의 동조 등을 '협공'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켰는지에 대한 논란은 법관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심사다. 오히려 조선일보가 일방적 비난과 압박을 가하는 것이 사법 신뢰를 더 훼손하고 있다.
사법부의 자정 노력은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
사법부가 내부 논의와 자기 점검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이를 ‘정치 판사’ 운운하며 폄하하는 것은 사법부의 건강한 자정 기능을 위축시키고, 오히려 사법부를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3,248명의 법관들을 대표하는 공식 기구로, 126명의 법관 대표가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기구다. 이들의 논의를 단순히 몇몇 '정치 판사'의 주도로 치부하는 것은 법관대표회의의 제도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법관대표회의를 '정치적 협공'으로 프레이밍하면서 헌법이 설계한 민주적 견제장치와, 사법부의 자정 노력을 왜곡하고 있으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독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