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제2의 이창용이 필요하다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13 07:00 | 최종 수정 2024.10.13 07:57 의견 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지난 1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2021년 8월 이후 38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p 내리면서 마침내 금리인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은행은 화폐를 찍어내고 금리를 결정하는 주체적인 기관이다. 즉 시중의 유동성을 관리하면서 물가를 관리하는 곳인데, 이 물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시중의 유동성이고 유동성 관리의 핵심은 이자율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경기가 과열되거나 침체될 때면 의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게 돼있다.

그런데 이 금리라는 것을 조정하려다 보니 금리가 내려가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고,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집값도 오르게 되니, 이번 금리인하를 앞두고 이창용 총재의 심기가 많이 복잡했던 것 같다.

국토교통부장관이 아침저녁으로 걱정해야 하는 아파트값을 이 총재가 걱정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지난 8월 교육부장관의 영역에까지 들어섰다.

8월 2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의 폭주하는 주택가격을 견제하려면 최고급 동네출신(강남)의 대학 입학에 상한을 둬야한다”면서 “강남에는 사교육 강사와 대학입학코치가 몰려있어 학부모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 집값과 대출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지방인구 감소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시 관련해서는 교육부, 아파트값 관련은 국토교통부, 대출 관련은 지식경제부, 불평등 악화 및 지방인구 감소 발언은 총리나 대통령이 해야 할 고민인 것으로, 거의 1인 5역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국은행 총재가 본인 영역을 한참 벗어나 오지랖이 너무 넓은 것 아니내는 비판의 소리도 나왔다.

특히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실행해서 강남의 상위권 대학교 합격률을 떨어트리면 강남의 집값이 잡힐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에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만약에 정부가 그런 비슷한 정책이라도 쓰게 된다면, 가뜩이나 국회의원 몇 석 못가지고 있는 국민의 힘이 전통적인 지지층인 강남도 잃고 그야말로 소수정당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현직 한국은행 총재가 내뱉은 것이다.

너무나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니까 국민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집값과 교육의 심각한 문제를 지적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한번 꺼꾸로 생각해보자. 이 총재가 금리인하를 두고 적당히 고민했다면 그런 발언을 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금리인하를 두고 얼마나 고민이 많았으면, 아파트값 상승의 원흉이 서울 강남이고, 그 문제의 발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남 고등학교의 상위권대 높은 합격률이었다는 것을 솔직한 심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총재의 한번 꽂힌 생각은 이번 금리인하 발표에 대한 기자와의 질의응답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금리인하로 인한 부동산 시장 불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역시 교육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 문제는 금리와 거시건전성 정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면서 “서울 지역 부동산겨격은 교육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달 반 전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금리인하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가격 기대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의 정책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관료들이 보인 모습과 많이 다른 이 총재의 발언은 신선한 모습으로 와 닿는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발언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의 업무 영역 내에서의 고민 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국토부, 교육부, 지식경제부 나아가서는 대통령실 영역까지 연계해서 정책 공조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어떤 학자는 이 총재의 이런 오지랖을 지나친 간섭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어느 한 부서가 해결하기는 불가능 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 총재의 오지랖은 절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총리가, 대통령실이, 그리고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을 이 총재가 대신 한 것으로도 보인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열정이 보이고, 진정으로 올바른 정책결정을 하고자 하는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제2, 제3의 이창용이 필요하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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