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도리와 국민의 도리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11 12:06 의견 0


197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스피커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로 시작되는 노래가 나오면 빗자루를 들고 나와 골목길을 청소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가에서 시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고, 그걸 안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거의 매일 아침 새마을 노래를 비롯한 국민계몽가요를 듣고 자랐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걸 마땅히 따르는 것이 '국민의 도리'인 줄 알았었다. 1970년대와 1980년초반까지만 해도 국가나 정부에 대하여 '국민의 도리'가 강조되던 시기였다.

1964년 미국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를 했다.

정부는 다음 보기 중 누구를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①소수의 대기업 ② 모든 사람의 혜택.

이 질문에 미국인들은 1대2의 비율로 ②라고 대답했다(29%대64%).

똑같은 질문을 2018년에도 했다. 이 때는 3대1의 비율(76%대21%)로 ①이라고 대답을 했다.

50년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격동기를 겪고서 2018년이 되었을 때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일을 한다는 낙관적인 대답은 개인주의와 냉소주의에 묻혀버렸다.

또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통 시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라는데 동의하는 미국인들의 비율도 1966년의 26%에서 2016년의 82%로 폭증했다.(이상 설문조사내용, 업스윙, Robert D. Putnam, p160)

참고로 조사시점인 1964~1966년은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사후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 재임중이었고, 2018년은 공화당 출신 트럼프 대통령 재임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지형과 무관하게 1960년대 미국사회는 공동체주의가 피크를 이룰 때였고, 2018년의 시점은 개인주의 시대인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동일한 질문을 우리나라에 던진다고 하면 어떨까? 이와 유사한 조사 결과 자료를 찾기 어려워 정확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다소의 시점차이만 있을 뿐 미국의 조사 결과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듯하다.

정부에 대한 연도별 만족도를 조사한 자료가 「2019년 행정에 관한 국민 인식조사」에 나와 있어 이를 인용한다. 2000년대 정부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명확한 것은 지금은 '국민의 도리'보다는 '정부의 도리'를 다해야 할 시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기회경제본부장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