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전만큼이나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둘러싼 공방 역시 뜨거운 가운데, 과연 일본이 미국의 자존심인 US스틸 인수에 성공할 수 있을 지에 세계 철강기업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US스틸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최대의 경합지인 펜실베니아 노동자들의 표가 걸린 지역의 대표 기업이면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카네기가 창업한 상징성이 있는 기업이다.
지난 2023년부터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를 추진해왔지만, US스틸 노조 반대에 부딪혀 시간을 끌어오다가 올해 들어서는 미국 대선과 맞물리면서 인수에 제동이 걸렸다.
이미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냈고,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US스틸의 CEO 데이비드 버릿을 비롯해 관리직들은 미국 정부가 US스틸 매각에 동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해리스와 트럼프 두 대선후보가 모두 매각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일본제철의 인수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바이든 정부가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근거는 철강이 전략산업으로 안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실제 US스틸 생산량 중 7%만이 군사용으로 공급되고 있어 반대 근거로 보기에는 약한 면이 있다.
데이비드 버릿은 근래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US스틸 매각계획이 무산되면 피츠버그 몬밸리 제철소를 폐쇄하고 본사도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매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매각의 형식을 빌어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는 방법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와 대선후보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US스틸의 공장과 본사가 있는 펜실베니아가 대선의 최대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대선 때마다 표가 갈리는 스윙스테이트 중 가장 대표적인 펜실베니아주는 철강 및 자동차 등 제조업 기반의 러스트벨트 중에서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19명을 가진 곳으로서 이 지역을 가져간 사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대선 후보들은 펜실베니아를 비롯한 소위 러스크벨트 지역의 노동자 표를 얻기 위해선거때마다 제조업 부양을 내걸면서, 이들 지역의 노동자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US스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도 매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US스틸은 1901년 미국 역사에서 돈 많은 부자 중 가장 존경을 받는 앤드류 카네기가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창업한 철강회사로서 미국 철강생산의 90%를 점유한 기업이다.
철강왕으로 불린 앤드류 카네기는 미국 역사에서 석유왕으로 불리는 록펠러와 함께 가장 부자였던 인물인데, 재산을 불리는데 집중했던 록펠러와는 달리 번 재산 모두를 사회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사망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카네기는 철강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번 이후 회사 지분 대부분을 공동창업자인 JP모건에 넘긴 후 본인은 기부활동에 전념했다.
피츠버그에 카네기멜론대를 세워 펜실베니아 최고의 명문대학교로 만들었는데,. 이 대학 출신 20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카네기는 현재 미국 전역에 있는 도서관의 80%를 세워 각 지역에 기증하기도 했다.
카네기의 어록을 보면 그의 기부에 대한 철학을 알 수 있다. 그는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사람처럼 치욕적인 인생도 없다” “부자인 채 죽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등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묘비명도 유명하다. 카네기 무덤의 묘비에는 ‘자기보다 훌륭하고 덕이 높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을 곁에 모아둘 줄 아는 사람. 여기 잠들다’라고 적혀있다.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학력은 국민학교에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는 짐꾼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성실성을 인정받아 철도회사에 취직한 후 모은 돈으로 농장을 인수했는데, 그 농장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부자가 됐고, 철강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김준기 DB그룹(전 동부그룹) 창업회장이 20대 중반 대학교 재학시절에 산업시찰단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카네기의 묘비명에 감동받아 DB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훗날 카네기 처럼 철강사업에 뛰어들어 냉연사업에서는 성공했지만, 뒤늦게 전기로 열연사업을 시작하면서 큰 손실을 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창업 후 많은 인재를 쓰면서 기업을 키워나갔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당시 본인보다 나이도 10살 이상 많은 서울법대 출신의 윤세영 현재 태영그룹 창업회장이다. 윤 회장은 김 회장 밑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1973년 태영을 창업했다.
US스틸을 인수하기 위해 소유하고 있던 포스코홀딩스 지분 3.42%(약 1조1000억원)까지 매각에 나선 일본제철이 계획대로 US스틸 인수에 성공할 수 있을지 세계 철강업계의 관심사다.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게 되면 철강생산능력은 8600만톤으로 일본제철은 현재 4위(4437만톤)에서 중국의 바오우(1억3100만톤)에 이은 세계 2위로 올라서게 되고, 더 나아가 조강생산능력 1억톤을 넘기는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이럴 경우 현재 세계 7위인 포스코에 비상이 걸리게 됨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산업연대로 인해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연 20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이후 차기 대통령이 US스틸 매각을 허락할 지 아니면 매각반대에 나서면서 일본제철 인수전이 물거품이 될 지 갈림길에 놓여있는 시점이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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