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난히 높이 솟아있는 외관이 화려한 고급 아파트 단지를 볼수 있다. 용산 이촌동에 있는 '래미안 첼리투스'와 성수동에 있는 '트리마제'이다. 문득 두 아파트가 어떻게 35층이라는 층고제한을 뚫고 높이 올라갈 수 있었을까하는 호기심에 자료를 찾아 보았다.
첼리투스는 이촌 렉스아파트를 1:1로 재건축한 것으로 56층이다. 1974년에 준공된 렉스아파트는 2000년무렵부터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을 두고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용적률이 200%를 넘고 있어 사업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발표되었고 2008년 12월 전체부지의 25%를 기부채납하는 대신 56층으로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했고, 2009년 12월 3개동 460가구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가구당 수억원의 분담금을 내는 대신 전가구가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급 주거단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기부채납받은 토지로 한강으로 연결되는 통로나 공원등 공공시설을 조성해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첼리투스 단지 주민외에 이용하고 있는 시민이 몇이나 될 지 의문이다.
트리마제는 당초 2004년 성수1지역주택조합으로 설립되어 시작되었던 사업이나 또 역시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해당 부지가 초고층 개발이 가능하게 되자 계획이 대폭 수정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행사가 부도처리 되고, 두산중공업이 2014년 인수후 47층 688세대의 하이엔드 주거시설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역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급 아파트가 된 것이다.
한강르네상스의 당초 목적은 단순히 한강을 정비하는 것을 넘어 한강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데 있다. 사유화된 한강변을 시민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고, 한강변 성냥갑 아파트 탈피, 랜드마크 구축, 한강을 세계적인 관광명소이자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축으로 발전시켜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있다고 한다.
또한 콘크리트 인공 호안을 녹지로 바꾸고,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한강 르네상스는 '공공기여를 통한 규제 완화'라는 전략을 활용해 한강변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수변 중심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러나 두 아파트단지 사례로만 볼 때 수혜를 입은 사람은 첼리투스의 460가구와 트리마제 688가구의 주민이 전부이다. 단지외의 주민들은 가로막고 있는 고급 아파트단지로 인해 한강접근성만 더 어렵게 되었을 뿐이다. 골목골목을 통해 한강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주민들은 비싼 아파트 단지를 우회하여 내려가야 한다. 시민들이 해당 단지내의 공공기여길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접근하기는 오히려 더 어렵게 되었다.
강남의 타워팰리스 단지나 목동의 하이페리온 초고층 단지의 경우 내부 통행로가 대부분 공용로이지만 단지내 주민말고는 이용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 모두를 위한 한강이 아니라 일부를 위한 한강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강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네이밍된 성수재정비촉진지구도 결국은 이로인해 한강변의 접근이 더 어렵게 될지 모른다. 만약 고밀개발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혼합용도지역으로 주거와 상업, 문화, 업무시설이 어울어진 곳으로 포용적 개발을 한다면 오히려 더 한강으로의 접근성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 살고있는 주민들은 내 집이 개발되면 당연히 땅값도 집값도 오르게 되니 반대할 리가 없다. 다만 다시 그곳에 들어가서 사는 원주민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서울의 경우 재개발로 재정착하는 원주민의 비율이 27.7%(서울연구원, 2024)에 불과하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최초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고시를 2008.4.23에 하였고, 정비구역 지정 고시는 2011.1.20, 최고 높이 250미터(약 70층~80층 규모) 허용 및 각 구역별 유연한 층수를 반영한 정비계획 변경 결정 고시를 2025.3.27에 하였다. 공교롭게도 최초 고시 및 변경고시 시기가 모두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이 되면 신축이나 증축, 개축이 금지되고, 토지의 형질변경, 토지의 분할, 물건을 쌓아 놓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한강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미명하게 성수전략정비구역 1,2,3,4구역은 무수히 많은 트리마제로 바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1구역이 65층 내외 3,019세대, 2구역이 65층 2,609세대, 3구역이 2,062세대, 4구역이 77층에 1,579세대 총 9,428세대가 건립될 예정이다.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 입장에서는 탁트인 한강 뷰를 내려다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지만 편하게 한강을 이용하던 주민 입장에서는 왠지 불편한 단지내를 가로질러 가기보다는 단지 외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강의 공공성 회복은 일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성 회복이어야 한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한강조망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한강 접근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만약 재정비촉진지구가 뚝섬역과 성수역사이 연무장길, 까페거리까지 지정이 되었다면 한 해에 방문객이 2,700만명이고 외국인만 300만명인 지금의 매력적인 성수동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래의 조감도대로 성수전략정비구역이 완공된다면 다양성과 포용성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한강을 접근하기 위한 사잇길도 사라지게 된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그냥 고급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육지 위의 하나의 섬이 될 것이다.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힘은 거대한 개발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채우는 데 있다(소멸하지 않는 도시, 경신원, 182p).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