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를 언급한 구윤철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 사진=연합뉴스
연일 고공행진을 하면서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구윤철 지식경제부장관 겸 부총리가 환율폭등의 주범으로 국민연금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자칫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과연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환율이 진정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국민연금까지 망가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단 구 부총리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 구축을 위한 논의를 개시했다”면서 "세계에서 3번째 큰 연기금인 국민연금 규모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상회하고, 보유 해외자산도 외환보유액보다 많아지면서 국민연금이 외환시장 단일 플레이어 중에서 최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연금 규모는 현재 1322조원이고, 이 중 58.4%인 771조원이 해외 자산이나 주식 등에 들어가 있다. 구체적으로 해외주식 36.8%인 486.4조원, 해외채권 7.1%인 93.8조원, 대체투자 형식의 해외 부동산에 14.5%인 191.6조원이 투자돼있는 상황이다.
구 부총리는 "연금이 향후 3천600조원 수준으로 늘고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우리 시장에서는 달러 수요로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동시에 어느 시점이 지나고 달러를 매각해 원화로 바꿔야하는 시점에서는 대규모 해외자산 매각에 따른 환율하락 영향으로 연금 재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향후 환율하락에 따른 국민연금의 환손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환율비상에 따른 구 부총리 등의 4자협의체(기재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의 모임 목적은 환율폭등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고, 이 자리에서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가 언급된 만큼 국민연금 손실을 걱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를 줄이고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늘리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가 환율폭등의 주범으로 보는 소위 환율5적이 있는데, 첫 번째가 국민연금, 두 번째가 서학개미, 세 번째가 삼성·현대차 등 수출기업들, 네 번째가 수입기업들, 다섯 번째가 트럼프의 현금투자 요구 등이다.
국민연금은 전체 자금의 58.4%를 달러로 바꿔서 외국 투자상품에 넣어놨으니 그렇고, 서학개미 역시 올해 현재 288억달러어치 외국주식을 순매수하고 있다. 우리 수출기업들은 올해 들어 9월까지 약 8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거뒀는데, 대부분의 돈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달러로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수입기업들은 지금이 달러값이 가장 싸다는 생각으로 미래 필요한 수입자금을 위해 서둘러 달러를 사모으고 있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매년 200억달러의 현지 투자 역시 달러 수요를 일으켜 미리부터 환율을 자극하고 있다.
정부는 환율방어를 위해 이들 환율5적을 문제시하고 있지만 이들의 행동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앞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업 및 금융 전문가들이 꼽는 환율5적은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통화량이다. 현재 국내 원화 통화량은 총통화량인 M2 기준으로 4400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GDP의 두 배 수준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이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놓고는 회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적은 낮은 금리다. 미국보다 낮은 금리가 4년째 이어져오고 있다보니 정상적으로 달러가 국내에 머물 이유가 없다. 단기적인 투자목적 이외에는 모두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달러가 달려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적은 정부의 확장재정이다. 이미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13조원을 풀었고, 내년 728조원의 슈퍼예산을 책정해 내년에만 재정부족분 100조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 외 미국 트럼프의 2000억달러 현금투자가 네 번째 적이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환율폭등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정부의 잘못된 태도가 다섯 번째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기업들이 왜 달러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을까? 국민연금은 보유자산의 반 이상을 왜 외국 자산에 집어넣었을까? 서학개미들은 1년 사이에 외국 주식 투자에 100조 이상을 늘렸을까?
그 원인을 정부가 모를 리 없으면서 자신들이 콘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를 건드려 환율을 방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학개미들에 대해 현재 22%의 세금을 물리고 있는데 이것도 더 올릴 기세다.
환율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금융시장 구조를 만들어놓고는 자신들의 잘못을 고칠 생각을 하지않고 정상적인 이유를 가지고 투자를 하고 있는 선의의 백성들 탓을 하다니. 그리고 강제적으로 물꼬를 바꾸려하다니. 나중에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국민연금이 현재 상황에서도 2050년이면 고갈된다는 전망이 있어, 청년들의 국민연금 불신에 따라 국민연금 개선책을 내놓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 국민연금을 건드려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러다 국내 외환위기 같은 상황이 와서 국민연금이 다 털리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이재명 정부 들어 부동산대책을 다섯달 사이에 세 번씩이나 내놨지만 전혀 잡히지 않는 이유 또한 넘쳐나는 원화로 돈값이 말 그대로 똥값이 됐기 때문인데, 그 원인은 제거할 생각을 하지않고 국민연금과 서학개미를 역적으로 모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술 더 떠서 27일 금리동결 후 “환율 폭등의 원인이 미국과의 금리 차는 아니다”란 말을 내뱉었다. 돈을 있는대로 다 찍어내서 돈풍년을 만들어놓은데 더해 금리를 마구 내려서 미국 금리보다 1.5%나 낮게 운영해 달러유출 원인을 제공해놓고는 똥값이 된 원화가치가 환율폭등의 원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다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가 더 문제다. 그래서 환율5적의 마지막 다섯 번째 적은 바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환율5적 모두 정부란 말이 된다.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나라가 휘청이게 됐는데 남탓만 하니 이러다 진짜 제2 외환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