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워싱턴 내셔널스팀의 딜런 크루스 선수. 이번 APEC 기간 중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로 이 선수의 사인이 든 배트를 가져왔다. 사진=AP/연합뉴스

"당신은 대통령으로서 일 잘 못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 준 야구방망이 선물을 두고 인터넷에 나온 표현이다. 사실상 조롱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것. 왜 그럴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한 야구 배트와 야구공을 30일 공개했다. 야구 배트에는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 딜런 크루즈 선수의 친필 서명이, 야구공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장이 각각 담겨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억원짜리 신라 천마총금관 모형을 준 것과 비교해도 상당이 격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대통령실은 “이 방망이는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야구를 전한 역사와 한·미 문화적 유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상당히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야구팬들은 단박에 “선물의 격이 안 맞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놓았다. 사인 배트의 주인공이 미국 야구를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인물이나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필 서명의 주인공은 딜런 크루스(23·워싱턴 내셔널스)로서 프로 2년 차 신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딜런 크루스는 누구이고, 다음 성적을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야구방망이는 한미간 문화적 유대의 상징일까, 아니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평가점수를 의미한 걸까?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팀이 신인 선수를 뽑는 과정이 2023년 드래프트가 열렸다. 당시 최상위권 유망주 2명이 있었는데 투수는 폴 스킨스, 야수(타자)는 딜런 크루스였다.

국내 야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둘 다 광주광역시 출신인데, 당시 우선 지명권을 가진 기아가 타자(야수)인 김도영을, 그리고 그 다음 지명권을 가진 한화가 강속구 투수인 문동주를 지명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도영과 문동주 가운데 누가 더 성공작인지는 여러분의 판단 몫이다.

1순위 지명권을 지니던 피츠버그가 장고 끝에 폴 스킨스를 지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다음 지명권을 가진 워싱턴 내셔널스가 전체 2순위로 딜런 크루스를 지명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폴 스킨스는 198cm, 106kg의 당당한 체구로 평균 98마일대, 최고 102마일의 빠르고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던지는 우완 쓰리쿼터 강속구 투수로,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볼을 던지는 선발 투수이다. 2024년 11승3패 1.96의 방어율, 2025년 10승10패 1.96의 방어율을 보였다. 2024년 데뷔해 바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받았고, 지난해와 올해 모두 올스타에 뽑혔다. 올해 내셜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로 사이영상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딜런 크루스는 180cm, 92kg의 몸을 갖고 있으나, 프로 무대에서는 지지부진하다. 폴 스킨스처럼 지난해 데뷔했는데 시즌 31경기에서 타율 0.218(3홈런 8타점)에 그쳤고, 올해는 출전 기회가 늘어 85경기에 나왔지만 타율(0.208)은 더 떨어졌다. 올해 연봉은 76만1800달러(약 11억원)로 리그 최저 수준이다. 작년 기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465만달러(약 66억원)다.

이 정도 성적에 계속 메이저리그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이 부족하면 금방 사라진다...그런데 이처럼 실력 떨어지는 선수, 곧 사라질 지도 모르는 선수의 야구방망이를 다른 나라 국가원수에게 주는 경우가 있나?

​야구 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을 홈으로 쓰는 내셔널스 선수 기념품을 준비한 것은 이해하지만, 크루스는 주전급 선수도 아니다”라며 “뉴욕 양키스 팬으로 알려진 트럼프가 한국과 인연이 있는 ‘홈런왕’ 애런 저지(33)의 방망이를 준비했다면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지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와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수퍼스타로 형제 중에 한국에서 입양된 형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저지의 타격은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의 최대 라이벌이 보스턴 레드삭스인데, 트럼프는 LA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붙었을 때 '미운 보스턴' 대신 LA를 응원한 적도 있다.

이번 트럼프가 가져온 딜런 크루스의 야구방망이가 가진 의미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해석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 딜런 크루스의 성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의 타율과 성적에 따라 트럼프와 이 대통령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그래서 트럼프의 속내가 궁금하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