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주 공장 건설 투자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지난 1년여 주도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군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세력 간 지분 싸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은 15일 미국에 10조원 규모 제련소를 건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사진=고려아연

현재 양측의 지분 구조는 영풍연합군 측이 44.24%를, 최윤범 회장 측이 32%대를 가지고 있어서 지분 측면으로만 보면 영풍연합군이 우세하지만, 이사회 구성은 총 15명 중 11명이 최 회장 측이고 4명 만이 영풍 측이라 경영권은 전적으로 최 회장 측의 뜻대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사회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들이 늘어날수록 지분이 많은 영풍 측 사람들이 이사회에 진입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영풍연합군이 지배력을 갖게 되는 구조로 돼있다.

당장 내년 3월 주주총회 싸움에서 현재의 지분 구조로는 최 회장 측이 매우 불리해, 주총 안건 처리에서 영풍 입김이 세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최 회장 입장에서는 내년 주총까지 지분을 늘리는 획기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 측이 내민 카드가 미국 공장 투자를 통한 우호지분 확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있는 기존의 Nystar 제련소 부지에 들어서는 고려아연 제련공장(Crucible Metals LLC)은 연산 54만톤의 아연, 연, 동, 희소금속 등을 생산하게 된다. 이 규모는 현재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총 투자금액은 10조9000억원으로 미화 74억3000만달러다. 완공은 2029년 12월 31일이다.

미국과의 합작투자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미 합작법인인 Crucible JV LLC에 미국 전쟁부가 40.1%를 투자하게 되며, 그 대신 고려아연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미국에 10.3%의 지분을 주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고려아연 지분 구조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됐다. 유상증자로 인해 영풍 측의 지분은 40%로 내려앉게 되고 최 회장측도 29%로 줄어들게 되지만, 미국 정부가 가진 10.3%의 지분이 최 회장 측 우호지분이 돼 결국 양 측 지분구조가 비슷한 수준이 된다.

누구도 50% 지분 확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절대적인 지배력 행사가 어려운 가운데,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최 회장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영풍과 연합군을 형성한 MBK파트터스의 현재 상황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끝까지 백기사로 나설 입장이 아닌 것도 큰 변수로 작용한다. 지난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홈플러스의 경영책임과 자산 처분이익을 챙겼다는 비난에 빠져있는 홈플러스가 남의 지분전쟁에 들어가서 싸움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홈플러스 경영진이 직원들의 12월 급여를 분할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MBK파트너스가 국민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도 입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미 미국이 산업안보 차원에서 “미국의 승리”라고 강조하면서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점도 영풍 측이 주장하는 반대 입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26년부터 미국은 한국아연의 확대된 글로벌 생산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확보해 미국의 안보와 제조업을 최우선에 둘 것이며, 이러한 승리를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밝혔다.

중국과 관세전쟁 속에서 희토류로 인해 뒤로 밀리고 있는 미국이 고려아연 이슈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외에도 스티브 파인버그 미 전쟁부 부장관은 "지난 50년간의 제련산업 쇠퇴를 되돌리는 전환점"이라고 했고, 그 외에도 빌 해거티 상원의원, 마이클 그라임스 투자촉진국 국장 등도 고려아연의 투자를 환영한다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정부도 이미 한미 합작 고려아연공장 건설에 깊이 개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고려아연의 미국 공장설립 내용을 언급하며 “고려아연뿐 아니라 우리나라 입장에서 희토류나 희귀광물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미 러트닉과 김정관 장관 사이의 교감이 있었음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의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대미 직접투자 2000억달러 외에도 마스가 등 기업들 투자 1500억달러 투자와 관련해서도 미국과의 물꼬를 터야 하는 마당에 고려아연이 미국의 아쉬움을 해결해주는 결정을 하니 환영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계 최고 수준의 아연 생산 기술이 미국으로 넘어간다는 점과 이번 합작 투자에서 미국은 리스크를 전혀 지지 않는 점은 투자의 기본 원칙을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은 우리나라 아연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세계 아연 생산량의 10% 이상을 담당하는 세계 1위의 아연생산 기업이다.

여기에 이번 총 투자규모 중 미국 측 대여금 6조9000억원(미국 전쟁부 3조4500억원, JPMorgan chase & co 3조4500억원)에 대해 고려아연은 총 8조800억원의 지급보증을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자회사인 Crucible Metals Holdings, LLC를 통해 3조7100억원을 손자회사에 투자하는 구조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 사업이 실패를 하거나 손해를 볼 경우에도 전혀 리스크를 지지 않는 사업이 되고,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가 된 것이다.

고려아연의 자본금이 현재 8조354억원인데 지급보증 금액이 자본금보다 더 많은 수준이다. 자칫 회사 전체가 날아갈 가능성도 열렸다.

그러니 미국 러트닉 상무장관이 “미국의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영풍의 백기사인 MBK파트너스가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에 시장의 눈이 쏠리게 됐다. 홈플러스 사태로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영풍의 백기사로 나섰지만 미국 지분이라는 복병을 만나 경영권 확보 노력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MBK파트너스가 엑시트(지분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럴 경우 영풍 측 지분이 크게 위축되면서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산업계 관계자는 “해방과 함께 북한 땅에 들어선 공산정권을 피해 황해도 봉산의 땅을 처분하고 남한으로 월남해 1949년 ‘영풍해운’을 공동창업하면서 75년간 잡음 없이 모범적인 협력 경영 모습을 보였던 영풍이 이제 3세에서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완전히 분리되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