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민선 8기 시정비전으로 '동행, 매력특별시 서울'을 사용하고 있다. 이 슬로건은 약자와 동행 하는 상생도시를 만드는 동시에 "매력"을 높여 뉴욕, 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TOP5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즉 서울이 국내 균형 보다는 글로벌 도시로서의 도시 경쟁력을 극대화하는데 정책적 에너지를 투입하겠다는 시정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를 위해 한강 수변 공간을 문화, 예술, 여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편하고, 수상교통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공원과 정원을 확충하고 도시의 녹지율과 쾌적성을 높이고자 하는 정원도시 서울, 주요 건축물 및 공공디자인을 랜드마크화 하는 도시 건축 디자인 혁신, 명동, 광화문, 강남 등 지역별 거점 공간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도시 전체의 매력을 균형있게 끌어올리는 매력거점 육성 등의 물리적 매력 제고 방안을 추진중에 있다.
이어 고립된 계층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약자와의 동행, 밤에도 즐길거리가 풍부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야간 관광 및 경제 , 뷰티·패션 산업과 교통 및 주거 혁신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살기좋고, 방문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글로벌 도시로 만드는데 집중되어 있다.
매력적인 도시란 단지 눈에 보이는 외형이나 유명한 랜드마크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문화적 다양성, 포용성, 지속 가능성, 경제력, 시민삶의 질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균형을 이룰 때 도시의 진정한 매력이 드러난다./p60
글로벌 도시 컨설팅 회사인 레저넌스Resonance Consultancy는 '주거 쾌적성Livability', '매력도lovability', '번영prosperity' 3가지 기준으로 도시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방문객과 인재, 기업들에게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준다./p60
레저넌스는 2024년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10위에 선정했다. 서울은 개인이 보유한 지식이나 기술, 경험 등의 경제적 가치를 의미하는 인적 자본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번영(8위) 부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도시의 물리적·자연적 환경 수준을 나타내는 주거 쾌적성(26위) 부문과 도시의 활력과 공간의 쾌적성을 평가하는 매력도(31위)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p77
런던, 파리, 뉴욕이 가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의 공통점으로 세계적인 경제력과 비즈니스 환경,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용하는 다문화 수용성과 시민의 포용성, 세계적 수준의 문화예술 인프라, 우수한 교통 연결성과 이동성, 지속 가능한 도시정책과 도시재생 전략을 들 수 있다./p71
런던, 파리, 뉴욕의 사례는 매력적인 도시란 단지 외형적 화려함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포용성과 지속 가능성, 창의성과 연결성 같은 복합적 가치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는 점을 보여준다./p71
이들 도시는 세계은행, OECD 등 국제기구가 제시한 '매력적인 도시의 기준', 즉 사회적 포용, 공공 공간 접근성, 삶의 질, 문화 다양성과 창의성, 지속 가능한 도시 환경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 특히 단기적 개발 성과보다 장기적 비전과 시민 중심의 도시 전략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한 점은 오늘날 한국 도시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p71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1961년 출간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에서 기존의 도시개발 방식을 비판하며, 도시 계획은 전문가의 거시적인 설계가 아니라, 실제 도시 거주민들의 일상적인 상호작용과 길거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람중심의 도시계획을 옹호했다. 그녀는 도시를 단순히 건물이나 도로의 집합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과 커뮤니티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식했다.
이어 매력적인 도시의 조건으로 혼합용도 개발, 짧은 블록과 보행 친화적인 거리, 다양한 형태와 시기의 건물, 충분한 인구 밀도로 보았다. 그녀의 주장은 당시에는 급진적이고 비주류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 도시계획의 패러다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많은 도시에서 짧은 블록, 다양한 골목, 보행자 중심 거리가 도시의 활력과 다양성, 안전을 위한 핵심 원칙으로 평가 받고 있다./p88
(1) 혼합용도 개발
그녀가 강조한 '혼합용도개발Mixed-use development'은 하나의 지역이나 건물에 주거, 상업, 업무, 문화, 공공시설 등 여러 기능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도시 구조를 의미한다. 그녀는 도시가 '유기적이고, 자생적이며, 정돈되지 않은'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혼합용도 개발이 도시의 다양성과 활력을 유지하는 데 더 필수적이라고 보았다./p84
1960년대 초반, 제인 제이콥스가 혼합용도 개발을 주장했던 시기에는 이러한 방식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미국과 많은 선진국 도시에서는 '용도지역제zoning'에 따라 주거, 상업, 산업 등 각 기능을 엄격히 분리하는 방식이 주류였고, 대규모 재개발과 고속도로 건설, 구시가지 철거 등이 도시 정책의 중심이었다./p84
그러나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면서 지역별 특성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고, 도시별로 획일적이고 경직된 토지 이용이 이루어져 오히려 효율적인 이용을 저해할 수 있다. 지나치게 분리된 용도 구획은 상업·주거·문화 기능의 융합을 어렵게 하여 도시의 활력과 다양성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용도 지역 지정 및 변경 절차가 복잡해 사회적·경제적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점도 있다.
1970년대 들어 용도지역제로 개발된 도시들은 다양성 부족과 단조로움, 교외 확산으로 인한 도심 공동화, 교통 혼잡, 슬럼화 등 다양한 문제를 겪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용도 분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이 시기부터 이러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합용도 개발이 점차 재조명되기 시작했다./p85
(2) 짧은 블록과 보행 친화적인 거리
제인 제이콥스는 긴 블록과 단조로운 도로 구조가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이웃 간 교류와 경제적 활력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는 블록이 짧고 교차로가 많을 수록 다양한 경로와 만남이 생기고, 보행자 유입이 늘어나며, 지역 상권과 커뮤니티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람들이 걷고 머무르며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보행 친화적인 거리가 도시의 안전과 활력, 사회적 유대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거리 설계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p88
(3) 다양한 형태와 시기의 건물 혼재
오래된 저렴한 건물부터 잘 보존된 역사적인 건물, 그리고 새로 지어진 신축 건물까지 다양한 유형의 건물이 공존할 때 여러 소득 계층이 한 지역에 함께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오래되거나 규모가 작은 건물은 상대적으로 임대료나 거주 비용이 저렴해, 소득이 낮거나 창업 초기 단계의 개인, 소상공인, 예술가 등이 이용할 수 있다.
반대로 신축건물이나 대형 상가는 더 높은 소득 계층이나 기업이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은 한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과 직업·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일할 수 있게 하며, 도시의 사회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인다./p91-92
그녀의 이러한 관점은 1990년대 이후 도시 정책에서, 도시 내 빈곤의 집중과 주거지의 사회적 분리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소외', '사회적 혼합', '다양한 소득 계층 혼합 개발'과 관련한 정책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미국의 대규모 공공주택 재개발 프로그램과, 영국을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소득 계층이 함께 살도록 하는 혼합 주거Tenure Mix정책이 시도되었다./p92
이러한 정책들은 도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중요한 시도였지만, 실제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사회적 통합이 단순히 공간의 물리적 설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주민 간의 신뢰와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 교육, 중재, 그리고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물리적 접근이 병행될 때 비로소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한 지역 사회에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다./p92
(4) 충분한 인구밀도
충분한 인구밀도는 도시의 거리와 공간이 하루 종일 활기를 유지하게 하고, 다양한 활동과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든다. 그녀가 말한 '충분한 인구밀도'는 단순히 정주 인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머무는 사람'과 '드나드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p93
충분한 인구밀도는 도시의 활기뿐만 아니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모든 시간대에 거리에 충분한 사람들이 있을 때, 제인 제이콥스가 강조한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 개념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시의 거리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활동할 때, 이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즉, 지역 주민, 상점주인, 보행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를 지켜보는 것이 범죄예방과 질서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p93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제인 제이콥스는 에버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도시 구상이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근대 도시계획 이론 등 중앙집중적이고 획일적인 공간 디자인을 추구하던 당시 도시계획가들의 접근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p94
그녀는 르코르뷔지에식 고층 아파트 개발과 하워드식 저밀도 전원도시 모두 저밀도와 분산된 구조, 통행의 제한성, 그리고 일상적인 상호작용의 부족으로 인해 각 공간이 넓게 분리되고 거리 공간이 비어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러운 감시와 공동체의 활력이 약화되어 오히려 범죄 위험이 증대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p94
제인 제이콥스가 강조한 매력적인 도시 만들기의 4가지 요소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 4가지 요소가 모두 충족될 때 도시의 다양성, 활력, 안전, 사회적 포용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특히 네 번째 요소인 '충분한 인구밀도'는 도시의 지속적인 활력과 경제적.사회적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적정한 인구의 집중은 다양한 용도의 공간과 건물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이는 자연스러운 감시와 교류, 그리고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안전하고 활기찬 도시 환경을 조성한다. 제인 제이콥스의 도시에 대한 철학은 과거의 대안이 아니라, 오늘날 쇠퇴와 소멸 위기에 놓인 도시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나침반이다./p95
옥수동의 저층주거지, 삼양동 사거리, 신당동 떡볶이 거리, 성수동 거리 등에는 보행자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강남의 대단지 아파트 주변, 테헤란로의 대형 오피스 건물 주변, 목동신시가지 대단지 아파트 주변의 거리에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걸으면서 볼거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한강버스를 타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면, 저층 주거 및 상업시설이 함께 있는 지역을 대형 주상복합 건물로 재개발한다면, 오래된 건물과 신축건물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골목들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다면, 종묘와 남산의 통경축을 확보한다는 미명하에 싹 갈아엎고 대형 건물 사이로 공원을 조성한다면, 그 주변 거리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매력적인 도시가 될 지 의문이다.
사람중심의 도시개발이 아니라 랜드마크 중심의 도시개발로는 매력도시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 이 글은 '소멸하지 않는 도시(경신원, 2025, 투래빗)'에서 내용을 인용하여 작성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