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간선거를 대비한 순회연설 첫 번째 순서로 경합지역인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에서 경제 관련 연설을 한 후 춤을 추고 있다. 사진=백악관홈페이지
우리나라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로 불확실성의 연속을 철학적으로 표현했지만, 여러 곳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직접적으로 표현해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단어 자체가 특정 상황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에는 와닫지 않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미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의 단어로 슬롭(slop)을 꼽았다. 음식물 찌꺼기란 뜻인데 인공지능이 생성한 깊이나 진실성이 부족하고 양적으로만 많은 '쓰레기' 같은 콘텐츠를 비판하는 의미다.
한발짝 더 나가서 슬롬(slom)이란 단어도 올렸는데, slop과 spam의 조합으로 버려야 하는 쓰레기 정보를 넘어서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유해정보가 난무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분노의 미끼(rage bait)를 정했다. 분노 유발 콘텐츠로서 트래픽이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노나 불쾌감을 유발하도록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를 말한다.
콜린스 사전은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을 정했다. AI 시대의 코딩 혁명을 상징했다. 캠브리지 사전은 파라소셜(parasocial)로 정했는데 팬들이 유튜버·연예인·AI와 마치 친한 친구처럼 정서적 연결을 느끼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TV에서 시작해 유튜브·SNS·AI 챗봇 등으로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단어보다 우리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있다. 미국 경제지에서 올해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y)다.
이 단어는 자신의 소득수준으로 얼만큼의 구매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표현한 ‘구매력 감당 소득수준’을 말한다.
트럼프 2기 들어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면서 미국민들 일자리를 위해 이민자를 추방하고, 관세폭탄으로 거둬들인 돈으로 미국민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한 트럼프의 주장과는 달리, 이민자가 없어 생산구조가 무너지고 관세로 인해 오히려 미국 물가가 올라가면서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현재 미국은 고물가, 고금리 그리고 경제력 양극화 심화라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미국민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식료품 가격은 팬데믹 시절보다 더 올라 정부의 목표 물가상승률 2.0%대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매년 상승추세를 이어가면서 누적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올라있다.
의료비 부담으로 병원 방문이나 약물 복용도 미루면서 국민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있고, 주택공급 부족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과 임대료 상승으로 첫 주택 구매자의 중위연령이 사상 처음으로 40세로 올라갔고, 임대료가 소득의 30% 이상을 차지해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소득층은 소득의 반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다.
대출연체율도 역대 최고치로 올라가면서 급여 담보 대출 등 위험금융 이용자도 급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증시의 호황으로 부유층의 부는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저소득층과 노동계층은 고물가와 생활비 상승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이다.
빈곤율 상승으로 앨리스(ALICE, Asset Limited, Income Constranined, Employed)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자산도 없고 생활비 감당하기 어려운 소득이지만 연방빈곤성 이상이어서 정부 도움 대상에서는 제외돼 일자리를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부류를 말한다. 트럼프의 MAGA는 결국 부유층이 대상이었고, 나머지는 ALICE가 된 것이다. MAGA와 ALICE로 대비되는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트럼프의 지지도 역시 1기, 2기 통틀어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AP와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의 여론조사결과, 트럼프 직무 전반에 대한 긍정 반응은 36%로 올해 3월 42% 대비 6p 떨어졌다. 특히 경제 관련해서 31%가 나왔는데, 올해 3월 40% 대비 9p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면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는 크게 패할 가능성이 높다. 비상이 걸린 트럼프가 지방 순회 연설을 시작했다. “미국이 어느 때보다 잘살게 됐다” “거둬들인 관세로 국민 모두에게 2000달러씩 기불하겠다” 등 내세우면서. 그러나 이미 미국 민심은 물 건너갔다.
우리나라 역시 어포더빌리티 측면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원화가치가 똥값이 되다보니 집값 폭등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서울 강남 중심의 인기 지역으로 돈이 몰려 오르는 집만 오르고 나머지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취업이 안돼 스스로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청년이 30%가 넘는다. 주식도 반도체나 조선·방산·원전 중심으로 오르고 나머지는 오히려 떨어져 여기서도 양극화다.
환율이 오르다 보니 수입물가가 한달 새 2.6%나 올랐다. 연간으로 환산할 경우 6개월만 곱해도 15.6% 상승한다는 수치다.
민생지원 소비쿠폰을 13조원 뿌려봐야 국민 개인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물가는 제외하고 달러만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환산할 경우 오히려 임금이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2020년 시간당 8590원이었고 그해 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1086원이어서 달러로 환산할 경우 7.9달러였다. 올해 최저임금은 1만30원인데 오늘(12월 14일) 기준 환율 1477원을 적용할 경우 6.8달러가 된다.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은 16.8% 상승한 반면 환율은 36.0% 상승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가까지 계산하면 임금은 크게 하락한 결과가 나온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어포더빌리티를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눈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2025 올해의 단어’는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