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스라엘 국방부가 엡스타인의 공을 인정해 준장으로 임명했다.

얼마전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 설계자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타계 소식을 글로 전한 바 있다.

2025년에 타계한 인물로 기억할 만한 사람으로는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 지오라 엡스타인도 있다. 지오라 엡스타인(1938~2025)는 지난 7월 19일 87세로 사망했다. 그는 제트 전투기 시대에 들어서 공중전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로 세계적 기록을 세웠다.

유대 고토(故土)에 정착한 폴란드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엡스타인은 조종사가 꿈이었다. 그러나 조종사 과정 입학이 거부되어서 엡스타인은 육군 공수부대원으로 입대했다. 조종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25세 나이로 헬기 조종사 훈련과정에 합격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공군사령관 에저 와이즈만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와이즈만 장군은 엡스타인을 직접 면담하고 전투 조종사 훈련과정 입학을 지시했다.

에저 와이즈먼은 나중에 이스라엘 대통령이 된다. 조종사 지망자를 공군사령관이 직접 면담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열린 자세가 특기할 만하다.

뒤늦게 조종사가 됐으나 엡스타인은 타고난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는 체구가 작아서 중력(G Force)를 잘 견딜 수 있고, 공수부대원을 지내서 하늘에 대한 공포심이 없었고 무엇보다 시력이 너무 좋아서 매우 멀리서 오는 점처럼 작은 비행체를 빨리 알아볼 수 있었다. 조종사가 된 후 얼마 있지 않아서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일어났다. 엡스타인은 프랑스제 미라지 III 전투기를 몰고 이집트 공군의 수호이 전투기 1대를 격추했다. 계속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소모전(‘War of Attrition’)에서 엡스타인은 미그 17 1대, 수호이 1대, 미그 21 2대, 총 4대를 격추했다.

1973년 10월 3일에 발발한 4차 중동전(‘Yom Kippur War’)에서 기지에 대기 중이던 엡스타인은 제일 먼저 출격 사이렌을 올리고 자신도 전투기에 올라타고 출격했다. 엡스타인은 프랑스제 미라지 V를 이스라엘이 개량한 네서(Nesher) 전투기를 몰고 적(敵) 전투기 12대와 헬기 1대를 격추했다. 한번은 혼자 비행하던 중 이집트 공군기 20대와 조우(遭遇)해서 미그21 4대를 격추하고 연료가 부족해서 기지로 귀환한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엡스타인은 총 17대를 격추했다. 5대를 격추하면 에이스(Ace)라고 하는데, 엡스타인이야말로 ‘에이스 중의 에이스”(Ace of the Aces)인 셈이다.

엡스타인은 1977년에 현역에서 은퇴했고 그 후 이스라엘 항공사 엘알에서 2003년까지 여객기 조종사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엡스타인은 여전히 이스라엘 공군 예비역 장교로서 전투기를 조종헸다. 1988년, 이스라엘 공군은 이례적으로 엡스타인에게 F-16 전투기를 배정했다. 엡스타인은 예비역 장교로서 F-16을 타다가 1998년에 완전히 퇴역했다. 그는 공군조종사로서 약 9000회 출격해서 5000시간 비행기록을 세웠고, 무엇보다 제트기 시대의 공중전에서 17대를 격추한 세계적 기록을 세웠다. 2018년 이스라엘 국방군(IDF)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엡스타인을 준장으로 임명했다.

엡스타인은 기지 작전실에 근무하던 여성 장교와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고 은퇴 후에는 텔아비브에 살았다. 엡스타인은 한 인터뷰에서 “F-16은 정말 좋은 전투기이지만 미라지에 비해서 한가지가 없는데, 그것은 ‘human touch’”라고 말한 적이 있다. F-16은 컴퓨터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가 전에 몰았던 미라지(Mirage)는 조종사가 기체를 자기 몸처럼 느낄 수 있는 항공기였고 그래서 자신의 기량이 발휘될 수 있었다는 의미인 듯했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