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쿠팡의 실질적 오너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자유시장경제를 해치는 가장 큰 적을 꼽으라면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을 시장원리에 맡기라고 주장한 고전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도 시장 질서의 가장 심각한 독소는 ‘독점’이라고 했다.
자유시장경제를 중요시하고 시장의 원리에 충실한 미국에서도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이 독점이다. 그래서 미국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이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국(DOJ)과 연방거래위원회(FTC)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경쟁력이 강하고 국가에 엄청난 세금을 낸다 해도 이들 두 기관이 조사에 나서면 해당 기업은 긴장할 수밖에 없고 주가도 폭락하게 된다. 그만큼 제재가 심하기 때문이다.
세계 검색시장에서 지배력이 가장 강한 구글의 경우 스마트폰 제조사 애플 및 삼성에게 거액을 주고 기본 검색엔진 지위를 유지한 것이 2024년 8월 불법적인 독점유지라는 판결을 받아 처벌을 받고 검색 분할을 명령받은 바 있다.
美 법무부는 구글의 독점 해소를 위해 크롬(Chrome) 강제 매각이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분리와 같은 강력한 시정 조치(Remedies)를 법원에 요청한 상태다.
애플의 경우는 아이폰 생태계에 사용자를 가두고 경쟁서비스 진입을 막았다는 혐의로 지난해 3월 美 법무부가 역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이의를 제기한 지 소송을 철회했지만 올해 6월 법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애플은 유럽의 '디지털 시장법(DMA)'과 맞물려 앱스토어 결제 수수료 및 외부 앱 허용 문제도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세계 1위 e커머스 아마존은 바이박스(Buy Box) 알고리즘을 조작해 다른 플랫폼에서 더 싸게 파는 판매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자사 물류 서비스 사용을 강제했다는 혐의로 FTC로부터 반독점법 위반혐의로 제소돼 올해 9월 약 25억 달러(약 3조 원) 벌금을 물기로 합의를 봤다.
메타(페이스북)는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한 것이 잠재적 경쟁자를 미리 제거한 ‘약탈적 인수’라며 이들 기업들을 다시 매각하거나 기업분할 해야 한다고 제소를 당했다. 다만 재판부는 틱톡, 유튜브 등 강력한 경쟁자 부상으로 독점의 정도가 약하다면서 올해 11월 메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시장 지배력이 확대될 경우 언제든 반독점법으로 제소를 당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 강력한 반독점법으로 기업의 시장 독점력을 잠재우려는 이유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겠다는 정부 차원에서 공공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다.
독점기업이 탄생하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말살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지게 되기 때문이다. 가격, 품질, 기타서비스 모든 부분에서 불이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가 탄생할 기회가 박탈되면서 시장은 정체되고 산업 발전도 후퇴하게 된다.
3370만명의 고객 정보가 털렸는데도 은폐와 엄폐에 급급한 쿠팡이라는 괴물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쿠팡에 대해 욕을 하기 전에 그런 괴물을 만든 주범이 누군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FTC에 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있고, 법무부 반독점국 역할을 할 수 있는 산업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있다. 그동안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6월 고객정보 유출이 시작됐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고객의 제보로 11월 20일 들여다보고는 4500명의 고객 정보 중 전화번호와 주소 등 간단한 것만 유출됐다고 하더니 그로부터 9일 후인 29일 3370만명의 고객이 기본 정보 외에도 거래내역과 공동현관의 비밀번호 등까지 털렸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제3자의 모든 불법 접속·악성코드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면책조항도 감히 넣었다. 어느 e커머스 사업자들도 그런 조항은 약관에 넣지 않는다.
가입은 단추 하나만으로도 되는 것을 탈퇴는 운전면허시험보다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확인/수정->비밀번호 입력->회원탈퇴 클릭->비밀번호 재입력->쿠팡이용내역 확인->설문조사의 단계를 거친다. 설문조사에는 탈퇴이유를 서술형으로 작성해야 한다.
전기사업법 제50조에 따르면 해지절차는 가입절차와 난이도가 같아야 한다고 돼있다. 그리고 불합리한 해지조건을 걸어서도 안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해지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못하게 돼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구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괴물 쿠팡은 3370만명의 고객 정보를 유출했지만 끄떡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간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이 쿠팡 정보유출에 대한 영향에 대해 논평을 내놨는데 대한민국 국민을 무시하는 멘트여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럴듯하다. 내용은“정보 유출에도 고객 이탈이 제한적일 것이며, 쿠팡은 한국에서 대체불가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한국의 소비자들은 데이터 유출에 대해 둔감하기 때문에 쿠팡의 지위에 변화가 없을 것이다”이다.
하긴 유심 해킹에 따른 정보유출로 인해 나라가 떠들썩했던 SK텔레콤에 대한 집단소송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개인정보 유출에 관대한지 알 만하고, JP모건의 논평 또한 전혀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최근 SKT 정보유출 관련 분쟁조정을 신청한 3998명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가 각 30만원씩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것을 SKT가 거부했다. 이들 3998명은 이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번에 SKT가 분쟁조정을 받아들여 3998명에게 30만원씩 지급할 경우 전체 피해자 2300만명에게 똑같이 30만원씩 총 6조9000억원을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이들 3998명이 민사소송에서 SKT에 승소해 1인당 1억원씩 배상을 받는다고 해도 SKT는 3998억원을 배상하게 되는데, 6조9000억원의 새발의 피가 되니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2300만명 피해자 중 분쟁조정에 고작 3998명만 신청한 것도 소비자 주권 측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민사소송에서 3998명이 승소할 경우 이 원칙이 2300만명 모두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고객무시 법체계 또한 문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소송한 당사자에게만 배상책임을 지게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SKT는 당연히 분쟁조정을 거부하고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국가는 국가대로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고객은 고객대로 제 권리를 찾지 못하니 괴물 쿠팡이 나타나고, 닭장 이코노미석을 만드는 대신 눈가리고 아웅식 프리미엄석을 구상하는 대한항공 같은 꼼수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부와 국민의 민낯이고 수준이다. 그래서 JP모건은 우리 국민을 호갱 취급을 한 것이다. 밖에 나가서 선진국이라고 하기 부끄럽다. 돈 벌기 참 쉬운 나라이기도 하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