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11월 2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사관후보생 임관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재벌기업들이 연말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마쳤다. 올해 주요 그룹들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 본격화와 슬림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 두 개의 키워드를 아우르는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기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2026년부터 펼쳐질 산업계의 흐름이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국내외적으로 불안요인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당장 원화 환율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해 수출입 시장이 안개속에 빠져있고, 미국에 대한 현지투자인 연간 200억달러가 본격화된다. 여기에 대미 상호관세 관련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변동성과 미중, 일중 갈등 등에 따른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변수들 역시 위기대응에 힘을 모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 됐다.

■삼성, 2인자 교체 및 회전문 인사

삼성그룹은 우선 그룹의 2인자를 교체한 것이 눈에 띄는데, 기존 사업지원TF를 책임지면서 2인자였던 정현호 부회장이 회장 보좌역으로 밀려나고 상설조직인 사업지원실로 바꿔 박학규 사장이 승진해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새롭게 이름을 바꾼 사업지원실은 과거 미래전략실만큼의 지배력은 갖지 않지만 회장의 지근 거리에서 그룹 전반을 챙기는 과거 미래전략실장의 위상을 어느정도 회복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법 리스크를 끝낸 이재용 회장이 실질적인 콘트롤타워를 가지고 조직을 직접 장악해나가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미 사업지원실은 각 조직에 퍼져있던 여러 인물들을 불러들여 조직별 관리체계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대외협력 기능(정보) 기능은 갖고 있지 않지만 각사의 대외협력 조직을 콘트롤할 경우 간접적인 대외협력 업무도 지휘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투톱체제를 구성했는데, 한종희, 전영현 투톱에서 한종희 부회장 사망 이후 그 자리에 노태문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올렸다. 현재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약화돼 SK하이닉스에게도 밀리는 처지에 특단의 대책 없이 회전문 인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기초과학 및 공학부문의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를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겸 삼성리서치장으로 승진시켜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HBM반도체에서 밀리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해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평가다.

지난해에 비해 임원 승진자 수도 늘려 공격 경영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 5년여 임원 승진자를 줄여오다가 이번에 161명을 승진시켜 지난해 137명보다 24명 늘렸다.

삼성의 인사는 한마디로 이 회장 친정체제 강화와 회전문인사라고 할 수 있다.

■SK, 이혼소송 승소 후 밀린 인사...실적 평가 중심

SK그룹 인사의 핵심은 최태원 회장의 이혼 관련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그동안 보수적인 인사에 머물다가 혁신적으로 바뀐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중요한 변화는 부회장단 변화다. 2021년 이후 4년 만에 부회장 승진자가 나왔다. 이형희 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부회장단이 그동안 5명에서 6명으로 늘었다.

이영희 부회장의 승진은 현재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최창원 부회장이 맡고 있는데 앞으로 이 부회장이 어느 정도까지 견제를 하면서 최태원 회장의 뜻을 관철시킬 지가 관전 포인트다.

SK는 SK하이닉스가 사실상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리는 독주 체제 속에 올해 일어난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태로 인해 이번 사장단 인사 역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SK텔레콤 유영상 사장이 수펙스로 옮기고 그 자리에 정재헌 CGO(최고 거버넌스 책임자)가 사장으로 선임됐다.

정재헌 사장은 현재 유심 해킹 관련 소송전에 대응하는 한편 고객에 대한 이미지 회복이라는 중요한 미션을 해결해야 한다.

정 사장을 포함해 사장 승진자는 11명이다. 지난해 2명 대비 5배로서 주요 계열사의 사장이 상당수 물갈이됐다. SK텔레콤 외에도 SKC, SK온, SK브로드밴드, SK(주), SK실트론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와 경영진이 대거 교체됐다.

SK그룹의 임원인사는 아직 마무리가 안 됐는데, 가장 먼저 시작한 SK텔레콤 임원인사에서 임원 30%가 짐을 싸 앞으로 있을 그룹 임원인사에 커다란 태풍이 예상된다.

■LG, 구광모-권봉석 단일 라인 구축...조직장악력 강화

LG 사장단 인사는 구광모 회장의 토사구팽과 조직 장악력 강화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투톱체제였던 ㈜LG의 권봉석 부회장과 화학과 배터리를 총괄하고 있는 LG화학의 신학철 부회장 중 신 부회장이 옷을 벗으면서 권봉석 부회장 단일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로써 그룹은 구광모-권봉석 일원화 체제를 갖추면서 실질적인 구광모 직할체제가 됐다.

LG그룹은 구 회장이 2018년 6월 40대 초반의 나이에 그룹 총수자리에 오를 당시 6명의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을 전면에 배치하고 그룹을 이끌었다. 당시 부회장단은 선대회장인 구본무 회장 측근들로서 △하현회(㈜LG) △권영수(LG유플러스) △조성진(LG전자) △박진수(LG화학) △한상범(LG디스플레이) △차석용(LG생활건강) 등 6인이었다.

이 후 이들 부회장들을 통해 그룹 구조조정과 기업 분할 등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 내보내고 권봉석, 신학철 부회장 투톱체제를 갖다가 이번에 권봉석 1인 부회장 체제를 만들었다.

그동안 부문별 부회장들을 통해 조직을 칼질한 후 내보내고 구 회장은 50대에 들어서기 전에 지배체제를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권봉석 부회장은 2021년 LG전자 사장에서 ㈜LG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한 재무통으로서 구 회장 지배구조 안정화에 기여를 하면서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LG는 이번 인사에서 신학철 부회장 퇴진과 함께 LG전자와 LG화학등 핵심계열사 CEO를 교체했다.

신임 류재철 LG전자 사장은 1967년생, 김동춘 LG화학 사장은 1968년생으로 50대 후반으로 신학철 전 부회장에 비해 10여 년 젊어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2025년 말 재계 임원 인사는 한마디로 세대교체이며 세대교체의 목적은 3, 4세들의 조직력 장악 강화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최태원 회장은 이혼 리스크에서 벗어나 그동안 참았던 임원인사를 본격적으로 한 것이고, 구광모 회장은 회장 취임 10년을 앞두고 본격적인 충성 조직 만들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