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세운4구역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주저했었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종묘의 가치를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들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면서 세운4구역이 처한 현실을 알리는 것은 어떨까 싶어 구체적인 수치들은 빼고 드라이하게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세운4구역은 1982년 4월 세운상가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고시부터 그 유래가 시작된다. 그후 2004년 2월 세운상가 4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이 수립되었고, 2006년 3월 종로구청이 시행자로 지정되었으나 재원조달 문제로 주민총회를 거쳐 2007년 9월 SH공사가 사업시행자로 변경되었다.
사실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사라졌지만 91%에 달하는 노후, 불량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었고 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전기누전 등으로 인한 화재발생시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한 구조로 대형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체계적인 정비를 통해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도시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SH공사에서는 문화재 보호법 및 서울특별시 문화재보호조례 상 문화재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경우에만 건축물 높이 제한이 있을 뿐 종로변으로부터 170미터가 이격된 세운4구역은 별도의 제한이 없다고 판단하여 2009년 4월 용적율 840%정도에 건물 최고높이를 122.3미터로 사업시행 인가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와 재심의를 거쳐 2014년 7월 용적율 610%에 최고높이 71.9미터로 가결되었고, 박원순 시장 재임시인 2018년 6월 사업 시행계획이 인가되었고 2019년 철거, 2021년 착공이 목표였다. 이때 인가된 계획은 숙박시설, 오피스텔, 사무실과 상업 시설이 들어가는 높이 71.8m의 건물을 짓는 거였다.
당시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자문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였고, 사업시행인가 신청 이후에도 관련 전문가 자문과 12차례의 문화재 심의 과정에서 당초 122.3m 높이를 71.9m로 대폭 하향 조정하였으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충분한 논의를 통하여 조건부로 가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2021년 오세훈 시장이 다시 당선되면서 녹지축을 만드는 세운지구 개발계획이 부활했고, 높이 제한의 걸림돌이 되었던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조례 제19조 제5항을 국민의힘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 의회의 도움을 받아 2023년 10월 폐지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기한 해당 조례의 개정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에서도 대법원 판결(2025.11.6)로 승소하자 용적율을 1000%까지 상향해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상이 세운4구역의 개략적인 역사이다.
세운4구역의 사업시행방식은 "관리처분 및 원가정산 혼용방식"인데 이는 토지 등 소유자는 토지와 일체의 부담을 제공하는 대신에 실질적인 의사결정과 개발로 인한 손익은 토지 등 소유자에게 귀속하게 하고, SH공사는 법정시행자로서 사업비를 선투입하고 프로젝트 관리, 건설, 분양 등 모든 업무를 수행한 후 건설원가만 회수하고 대행 수수료를 받는 업무대행자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사업방식은 당시에 LH공사의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방식으로 사업성이 좋은 경우에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으나 사업성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분양에 대한 책임은 없으나 비례율 하락으로 기대이익 감소 우려가 있고, 사업시행자는 미분양리스크 등에 대한 부담 증대로 투자비 회수가 장기화될 수 있었다.
SH공사에서는 2006년 사업참여 당시만해도 용적률 800% 이상을 예상하고 참여했고 문화재위원회에 의해 건물높이 제한으로 용적률이 610%로 떨어지게 되는 상황은 전혀 예상을 못했었기에 위와 같은 사업방식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사실 SH공사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사업시행방식 때문이다.
세운4구역의 2014년 당시 예상 사업수지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이미 선투입한 사업비 등이 있기 때문에 문화재위원회의 결정대로 610%의 용적률로 건설을 한다면 손실이 필연적이고,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매몰비용 등으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SH공사가 부담하게 된다.
1000%대의 용적률로 건설을 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투입된 금융비용 등을 감안하면 수익 발생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소수 토지주들의 사업성 향상을 위해 종묘의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옳으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손익부담 주체가 토지주들이니 SH공사는 대행수수료만 받고 엑시트하면 된다. 그러나 이게 가능할 지는 의문이다. 세운4구역이 처한 딜레마를 수습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 2009년 용적율 840% 사업시행인가 신청 당시(첫번째)와 2014년 7월 용적율 610%대(두번째), 그리고 오세훈 시장님이 1000% 용적율을 해도 종묘의 문화적 가치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광각앵글로 멀리서 찍은 Threads(2025.11.18)에 올린 사진(세번째)을 별첨한다. 정말로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경관이 침해되지 않는지 판단해 보길 부탁드린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