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10월 한국은행 금통위가 우리나라 기준금리를 2.5%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지난 5월 이후 5개월째 금리가 동결됐다. 올해 2월과 5월 두차례 금리를 인하한 이후 7월과 8월 동결을 한 후 이번에도 동결을 하면서 3연속 동결 행보를 이어갔다.
올해 경제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있지만, 그보다 부동산시장 불안이 금리동결 쪽으로 이끌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창용 총재가 이번 금리동결을 결정하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 앞으로 통화정책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만들고 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위험은 많이 사라진 상태”라면서 다음 행보는 금리인하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금리인하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집값이 내려야만 안정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상승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식의 부동산에 대한 완화적 발언을 내놨다.
즉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가격상승률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금리인하를 재개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내뱉은 것이다.
이러한 이 총재의 생각이 현재 부동산시장 불안의 요인이 된 것은 아닌 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수도권 집값이 폭등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시중에 풀린 엄청난 돈의 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5일 발표한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8월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전년 동월 대비 8.1% 증가한 4400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7월(8.3%) 이후 처음으로 증가율이 8%대로 올라섰다. 코로나19 당시 역대급 돈 풀기로 2021년 12월 M2 증가율은 13.2%까지 치솟았다가 금리 인상 국면에 들어선 뒤 2023년 8월에는 2.2%까지 급락했었다.
통화량 4400조2000억원은 우리나라 연간 GDP 약 2500조원의 1,7배가 넘는다. 엄청난 통화를 찍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 미국의 통화량이 GDP 대비 90%대에 머물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에 원화가 얼마나 풀렸는지를 알 수 있다.
어빙 피셔의 화폐교환방정식이 있다. MV=PT(통화량X유통속도=물가X거래량)인데 즉 시중에 풀린 돈의 총량과 거래된 제품가격 총량이 같다는 것이다. 즉 통화량이 늘어나면 돈의 속성상 유통속도가 빨라지는데, 이것과 균형을 이루려면 제품 거래량은 한계가 있으니 결국 물가가 더 큰 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공식이다.
앞에서 말한 명목GDP로 총통화량(M2)을 나눈 값이 미국은 0.9인데 반해 한국은 1.7이란 것이다. 그 많은 돈은 누가 풀어놨을까? 바로 한국은행이다. 어느 나라나 통화정책은 중앙은행 고유의 독립적인 권한이고 책임이다.
그동안 금리를 내리면서 시중에 돈을 있는 대로 풀어놓은 결과 집값을 폭등시켜놓고는 이제 와서 제3자인양 남의 나라 얘기하듯 말하고, 거기에 더해 집값 상승세가 꺾이면 다시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야말로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에 본인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제품 파월 연방준비위원회 의장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압박을 넘어 연준 보수공사 비리를 들어 수사까지 의뢰하는 등 협박까지 하고, 임기 8개월이 남았는데도 후임자를 인선하는 등 온갖 공격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를 하지 않고 있다.
파월은 트럼프가 취임한 1월 20일 이후 줄기차게 금리인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딱 한번 0.25% 내렸다. 우리나라와의 금리 차이는 2%다.
매번 파월은 지표를 보고 결정한다는 중립적이면서도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 결과 미국의 통화량(M2)은 GDP의 90%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물가가 아직 금리를 내릴 정도가 아니라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트럼프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압박을 가해도 끄떡도 안하고 독립기관인 연준의 최고책임자로서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중심을 잡는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내년 확장예산을 짜면서 시중에 돈이 더 풀리게 됐다. 올해 대비 8% 늘린 728조 슈퍼예산을 편성했다. 국가부채비율이 50%를 넘어서게 된다. 근래 OECD국가 가운데 국가부채비율 증가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됐다.
그런데도 이 총재는 여차하면 금리를 내릴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다. 오히려 유동성 회수를 위해 금리인상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명 정부가 집값 잡기 위해 온갖 대책을 내놔봐야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집값을 밀어 올리는데 부동산시장이 진정될 리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중의 넘쳐나는 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생산적인 유동성 흐름을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펀더멘털이 그정도로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변수에도 증권시장이 요동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결국 부동산시장이든 증권시장이든 넘치는 통화량은 시장의 불안만 키울 뿐인데, 한국은행을 책임지고 있는 총재가 통화량을 더 늘릴 생각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현재 이재명 정부 들어서 세 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넘치는 유동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유동성 넘치는 구조를 만든 한국은행 총재가 빠진 부동산대책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앞으로는 부동산대책에 한국은행 총재도 반드시 함께 참여할 필요가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지, 그리고 통화량과 집값이 어떤 관계로 움직이는 지에 대한 한국은행의 입장이 반영돼야 할 것이다.
언제는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대학교 입학 기준에 강남지역 학생 할당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이제는 유동성을 풀어 집값에 불을 지르고 있으니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