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세종-안성고속도로 현장 붕괴사고로 근로자 10명이 추락해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이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SPC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 산업 재해 방지를 강조하면서 쏘아 올린 ‘안전사고와의 전쟁’이 제조공장은 물론 건설현장 전체로 번져 건설회사들이 초 비상사태를 맞아 역대 가장 어려움을 겪는 2025년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5월 50대 여성근로자가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로 사망한 SPC삼립 시흥공장을 방문해 안전대책을 요구한 지 3일 뒤 포스코이앤씨 경남 함양-창녕 고속도로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 대통령은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면서 포스코이앤씨를 공격했다.
이것이 신호탄이 돼 근로자 사망사고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업계가 건설현장 안전사고와의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미필적 고의 살인” 발언에 이어 사망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의 면허를 반납시킬 방법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당장 정희민 사장이 사퇴하고 포스코그룹 안전 최고 전문가인 송치영 포스코홀딩스 그룹안전특별진단TF팀장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든 현장 작업을 중단시켰다. 이 후 송 대표가 중심이 돼 현장 별 점검을 한 후 합격점을 받은 현장만 공사를 재개시켰다.
모든 현장이 작업을 중단하면서 보이지 않는 원가와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8월 8일에는 디엘건설 의정부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나자 이 회사 강윤호 대표와 하정민 안전최고책임자를 비롯해 전 임원이 사표를 냈다. 역시 전체 현장 작업을 중단시켰다. 디엘건설은 이달초 후임 사장으로 여성찬 대표를 선임했다. 이 회사 역시 상당기간 전체 현장 공사 중단으로 손실을 떠안게 됐다.
이 외에도 3명의 사망사고를 낸 현대건설을 비롯해 1명씩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대형건설사들 역시 사고와 동시에 일정기간 전 현장 공사 중지를 하고 특별 점검에 나섰다. 이들 대형 건설사들이 한 회사당 최소 100개 현장을 운영할 경우 한 현장당 하루 공사물량을 1억원만 잡아도 하루 100억원의 매출이 날라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건설사들은 크든 적든 현장 안전에 올인하고 있다. 모든 임원들은 매일 몇 개 현장씩 담당을 정해 기술자들과 조를 짜서 순회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임원들을 본사에서 볼 기회가 없다 보니 업무보고 상당부분은 통화나 회사 메일로 주고받는다고 한다.
이들 임원들이 본사에서 본연의 업무보다 현장 안전점검에 모두 투입되면서 발생하는 업무 차질은 회사의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시장분석 및 전략 수립, 영업, 신사업, 위기관리, 재무관리, 인사관리 등등 임원들이 해야 할 회사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역할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고용노동부장관 역할도 건설현장 안전에 맞춰있다. 부처 이름에서 ‘고용’은 떼고 노동은 건설안전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은 지난 8월 14일에 이어 9월 23일 대형 건설사 대표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지난 15일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다시 강조하면서 안전관리를 재차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만든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 관계 부처에 등록말소를 요청할 수 있다. 또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차례 받은 후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가 발생하면 등록말소 요청 대상이 된다.
그리고 건설사 영업정지 요청 요건도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되고, 사망자 수에 따라 영업정지 기간도 현행 2∼5개월보다 강화된다.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사망자 수와 사고 발생 횟수에 따라 과징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다음달 13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 환노위의 증인채택 예정명단에서도 건설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단 대표적인 증인 소환 대상은 SPC삼립이지만, 그 외 상당수가 건설회사 대표들이다.
우선 올해 2월 세종-안성고속도로 상판 붕괴사고로 10명의 근로자가 추락해 4명이 사망하는 등 총 6명의 사망사고를 낸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해 4명의 사망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가 대표적이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은 환노위 외에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한국인 구금사태와 관련 주요 시공사 입장이어서 주우정 대표는 외통위에도 증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건설사 수난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건설업계 사람들 입에서 “건설업 못해먹겠다”는 말이 무의식 중에 나온다. 가뜩이나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분양시장도 좋지 않고, 정부 공사 발주 물량도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인해 건설업계 분위기가 위축될 대로 위축됐다.
사람의 생명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위험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의 안전장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건설사들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 발생하는 인명사고도 있지만, 안전사고의 상당수가 작업자의 잘못이기도 하다.
죽은 근로자는 자신의 책임이 얼마나 있냐를 떠나서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 이제는 사회적으로 개인에게도 얼마나 책임이 있는 지를 따지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책임은 국가나 기업이 다 져야 하고, 정권이 져야 하는 식의 방식으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정확히 규명해 기업이나 국가는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를 따져 그에 맞는 처벌과 책임을 지우되, 개인의 잘못 또한 명확히 따져 개인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개인들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해서는 안 되는 지에 대한 안전의식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개인 안전소홀로 공장이나 현장이 손실을 입었을 경우 배상책임까지 물릴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고, 글로벌 10대 무역강국이란 위상도 갖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보면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안전불감증이다. 국가나 기업 등의 안전의식 부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개인들의 ‘안전의식’ 수준은 위험군에 속해있는 형편이다.
이재명 정부의 ‘안전사고와의 전쟁’이 성공하려면, 기업의 안전시스템 확보도 중요하지만 국민 각자가 안전의식을 생활화하는 의식 전환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들이 아무리 안전에 힘을 빼도 효과는 없이 사회적 자원낭비만 생기게 된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