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대행


언젠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토지임대부주택을 반값아파트라고 열심히 홍보하고 계시는 당시 공기업 사장님이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 보고 있는 사진을 언론에서 본 적이 있다. 토지임대부주택에 진심임을 보여주기 위해 토지임대부주택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퍼포먼스를 했던 것 같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서울의 1.2배이고 인구가 600만명 정도 되는 도시국가로 면적이 작고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1960년 독립이후 주거안정을 위해 HDB(Housing & Development Board, 주택개발청)를 설치하여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고자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토지임대부주택이 주된 주택유형이 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들이 있다. 잘 알다시피 국토의 90%가 국유지이다. 그러니 집을 짓더라도 국가의 땅에 지을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토지를 임차하여 주택을 짓게 되었고, 태생적으로 토지임대부주택이 전통적인 공공주택 유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HDB에서는 99년 토지임대부주택을 공급하여 국민의 80%에게 주택을 공급하였고, 그 중 90%가 주택소유자이다. HDB주택은 분양가에 99년치의 토지임대료가 포함되어 있어 매월 토지임대료를 납부하지 않는다. 또한 HDB주택을 매매하고자 한다면 99년에서 남아 있는 잔여기간을 매수인은 승계하게 되며, 잔여기간이 짧을 수록 주택가격은 싸지게 된다.

매매 또는 임차시에는 HDB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매매가격은 HDB가 거래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HDB주택은 1주택만 소유해야 하며 평생 두 번만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와같이 싱가포르에서의 토지임대부주택은 국토의 90%가 국유지인 상황에서 나오게된 필연적 결과물이다. 매매시에도 HDB가 가격을 결정하게 되므로 시장에서의 주택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 주택시장의 가격 안정을 꾀할 수 있게 된다. 즉, 싱가포르는 HDB에 의한 가격통제수단이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의 토지임대부주택은 국민들의 생활에 체화되어 있는 주택정책으로 정착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국공유지가 25%이다. 그나마 대부분이 임야이며 대지로 활용될 수 있는 토지는 1%미만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국토, 특히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인 대지는 사유지이므로 단독주택이건 연립이건 아파트이건 건물에 대지가 부합되어 있는 주택이 체화되어 있다.

이러한 주택유형 중 특히 아파트는 수 십년 동안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상승해왔고, 당연히 대지지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왔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에 건물의 가치보다는 대지지분이 가지고 있는 가치로 인하여 고가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에서는 토지와 건물이 부합된 온전한 주택이 생활에 체화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토지임대부주택을 살펴보자. 당초 주택법에서 규정한 토지임대부주택은 살고 싶을 때까지 살고 공공에 다시 환매하여야 했고, 토지임대료는 매월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하게 되어 있었다. 환매를 받은 공공은 다시 저렴주택으로 저소득계층에게 공급하고, 오르지 않은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한 토지임대료를 납부하여 주거의 안정성을 기하도록 했었다.

그러던 차에 시민단체에서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주택을 반값아파트라고 들고나오면서 소비자인 국민들로 하여금 이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 되었고, 해당 시민단체 출신의 공기업 사장님은 시도 때도 없이 토지임대부주택만이 반값아파트인 것처럼 언론 인터뷰뿐만 아니라 SNS 등에 도배를 하면서 토지임대부주택의 전도사가 되었다.

당시 시민단체는 권력을 감시하는 기구라기 보다는 분양원가 공개, 토지임대부주택 등 설익은 정책들을 주장하는 정당에 가까운 단체라고 할 수 있었다.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반값아파트를 공급하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었으나, 이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몇 차례 글을 썼다.

그러면서 주택법령을 개정하여 제3자에게 팔 수 있도록 하였고(주택법 64조 1항, 2024.6.18), 토지임대료를 감정가격으로까지 산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주택법시행령 81조 2항, 2023.4.7) 조성원가을 기준으로 하여 영원히 토지임대료를 동결시킬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해당 시민단체 출신의 사장님이 주장하던 토지의 공공성도 건물의 공공성도 확보하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짝퉁 토지임대부아파트를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토지임대료가 분양가에 포함되어 있는 싱가포르와 달리 매월 토지임대료를 납부하게 되는 또 다른 개념의 임대아파트를 탄생시켰다. 또한 분양아파트이기 때문에 취득세,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은 부담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건물의 감가상각으로 상대적으로 집값은 오르지 않아 수분양자로 하여금 자산축적사다리 기능도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세금 부담이 없는 장기전세보다도 입주민 입장에서는 더 좋은 걸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토지임대부나 장기전세나 20년후 입주민들은 벼락거지가 되기 십상이었다.

고덕강일 3단지 사전예약을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하여 1차는 2022.12.30 공고되어 토지임대료를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공급하게 되어 있었는데 59제곱미터의 분양가를 3억 5,500만원, 토지임대료를 월40만원으로 예약을 받았고, 2차 사전예약은 2023.6.16 공고되어 토지임대료를 감정가격까지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49제곱미터 기준 분양가를 3억 1,400만원, 토지임대료를 월35만원에 예약을 받았다.

2026년 지방선거후에 본청약을 한다고 하는데 예약받은 대로 단지의 평당분양가와 토지임대료가 적용된다면 사전예약을 받은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양공고는 본청약을 기준으로 하게 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과연 약속한 금액에 본청약을 할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와같이 싱가포르와 우리의 주택에 대한 소유권 생활양식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짝퉁 토지임대부주택을 반값아파트라고 주장하면서 공급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의 부동산을 대하는 생활양식을 고려할 때 분양아파트의 전형으로 맞는 지 생각해봐야 한다.

새로운 공공주택 유형을 만들어낼 때에는 그 나라 국민들의 전통적 생활양식을 존중해야 하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사회에 수용되기 어렵다면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