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그룹 주력사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는 등 본격적인 위기를 맞고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사진=롯데
지난해 8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사장단 회의를 열고 그룹 비상경영을 선포했지만, 그동안 별로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1년 여 지난 지금 그룹 여러 기업들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입으로만 비상경영을 부르짖으면서, 책임은 임직원에게 돌리고, 오너 일가는 권리만 챙기면서 비상경영 효과를 볼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신용평가기관인 한국기업평가는 롯데케미칼의 기업 신용등급을 기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계단 강등시킨 것을 비롯해 롯데지주 AA-(부정적)->A+(안정적), 롯데물산 AA-(부정적)->A+(안정적), 롯데캐피탈 AA-(부정적)->A+(안정적), 롯데렌탈(AA-(하향검토)->A+(안정적)으로 모두 1단계씩 강등시켰다.
지난해 8월 신동빈 회장이 본격적인 비상경영체제 선언을 하게 된 계기가 됐던 신용평가사들의 하향조정 조치가 있은 지 11개월 만에 그룹사들의 신용등급 하락이 가시화 된 것이다.
신 회장이 비상경영을 선포한 지 이틀 후인 8월 3일 국내 신용평가사 3사(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는 2024 정기 평가에서 롯데계열사 5곳(롯데케미칼, 롯데지주 롯데캐피탈, 롯데렌탈, 롯데물산)에 대한 신용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한 바 있다.
당시 나이스신용평가가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를 한 바 있어, 나이스는 이 두 회사에 대해서 곧 등급강등 평가를 내릴 전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롯데그룹의 위기의 주범인 롯데케미칼의 경영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못하면서 결국 지난해 말 ‘롯데 모라토이엄’ 루머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7626억원, 2023년 -3477억원, 2024년 -8941억원 등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후 올해 1분기에도 -1266억원 적자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의 기한이익상실을 해결하기 위해 그룹의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도 채권자들에게 담보로 내놓은 상태다.
지난해 11월 21일 롯데케미칼은 제 60-3회 외 무보증사채 기한이익 상실 원인사유가 발생하면서 그룹 유동성에 비상이 걸렸고, 12월 초 해당 사채권자들의 요구에 따라 담보 보강 차원에서 자산가치 6조원에 달하는 롯데월드타워를 추가 담보로 내놓고 채권 기한연장을 해놨다.
롯데케미칼이 현재와 같이 적자를 지속해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상환에 실패할 경우 롯데지주를 비롯해서 롯데월드타워 등 자산이 채권단에게 줄줄이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8월 사장단 회의에서 롯데그룹의 본격적인 비상경영을 선언한 바 있다. 신 회장의 비상경영 선언 이전에 이미 지난해 6월에는 롯데면세점, 7월에는 롯데케미칼이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가면서 전 임원 급여 20% 삭감, 면세매장 일부 폐쇄, 임원 항공권 등급 하향조정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같은 해 8월 1일에는 신 회장이 직접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기존사업 경쟁력 강화, 글로벌 사업 안정적 수익 창출, 고부가 사업 확대, 재무건전성 관리 강화 등 4가지 목표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자구노력은 미흡했고, 기껏 임원 주말 근무와 경비절감에 더해 지난해 말에는 임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임금 줄이기에 나선 것이 전부로 보인다.
그 결과 비상경영 선언 1년 여가 지난 현재 롯데그룹의 신용은 나빠질 대로 나빠져 그룹 지주사를 비롯해 다수 기업들의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소문으로만 돌던 그룹 모라토리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28일 단행한 그룹 임원인사는 그룹 내 CEO(최고경영자) 21명을 교체했는데 이는 전체 CEO의 36%에 달했다. 또한 임원 중 22%를 해고했다. 일부 신규 승진임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임원 수는 13% 줄어들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당시 그룹 임원들에게는 가차없는 칼날을 날리면서 외아들인 신유열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그룹 임직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비상경영에 따른 경영합리화 조치에 오너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구조조정의 효과가 반감되고 오히려 그룹 임직원들의 애사심을 망가트리는 요인을 제공한 것이다.
신 부사장은 현재 39살 나이로 2022년 5월 롯데케미칼 상무보로 입사해 약 2년 6개월 만에 3직급 승진해 부사장까지 올랐다.
신유열 부사장은 현재 국적이 일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38세까지 외국인 국적을 유지한 후 한국인으로 귀화하면 병역이 면제가 된다. 꼼수 병역기피라는 손가락질도 받을 수 있다.
그룹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가운데 오너 일가의 희생과 모범이 필요한 시점에, 롯데그룹은 책임은 임직원에게, 권리는 오너가 갖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진정한 위기 타개의 동력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회장의 염치없는 단적인 예로 지난해 최악의 영업적자를 낸 롯데케미칼에서 수십억원의 연봉을 챙겨갔다. 롯데케미칼이 2022년부터 대규모 적자행진을 벌이면서 지난해에는 8794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지만 신 회장은 연봉으로 38억원을 챙겨갔다.
수십명의 임원을 해고하고는 아낀 돈을 신 회장이 가져간 셈이다. 지난해 GS그룹의 허창수 회장이 2023년 1조313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GS건설로부터 받는 연봉을 제로(0)로 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비교된다.
산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모라토리엄 선언 우려는 지난해 말 모 유튜브에서부터 시작됐고, 당시 롯데그룹은 루머 확산과 보도 등에 대해 강력한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롯데케미칼이 기한이익상실 상황 속에서 채권단에게 그룹의 자존심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놓게 됐다”면서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만기가 올해에만 1조원 가량 돌아오는데,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자칫 올 연말 안에 백기를 드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