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의 집값이 역대급으로 오르고 있는 것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6월 27일 정부가 강력한 대출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시장은 일단 파랗게 질렸다. 강남벨트 입성을 노리는 사람들은 당장 수십억원의 현금이 필요하고, 그 외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서민 수준의 아파트를 장만하려고 해도 준비해야 하는 현금이 크게 늘어나면서 서민들의 집 장만이 쉽지 않게 됐다.
당분간 강력한 수요억제책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은 차갑게 식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에서는 주거 빈부 격차를 키워 주거 양극화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야 어느 정도 망가지더라도 자정기능이라는 복원력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되돌아 올 수 있지만, 이번 대출규제책을 보면서 크게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실의 입장과 태도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23일 만인 역대 정부 최단 시간 내에 부동산대책 1호를 내놓고는 대통령실은 모르쇠 태도를 보였다. 역대급 대출규제책을 발표해놓고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니?
지난 27일 아침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만든 대책을 발표한 지 몇 시간 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금융위원회에서 나온 대책으로 안다.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면서 “혼선을 빚을까 봐 말씀 드리는데 부동산대책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나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럴리가 있냐, 서민들 힘들게 해놓고는 대통령실은 쏙 빠지는거냐 등등 민원이 빗발치자, 다음날 강 대변인은 “부처들과 정책 관련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란 말로 해명을 대신했다.
국민 재산의 75%가 부동산에 묶여있는 세계 1위의 부동산 집착국민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부동산대책을 그것도 강력하게 대출규제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관여한 바 없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부동산대책이야 잘못된 결과가 발생할 경우 상황에 맞게 고치고 조정할 수 있지만, 정책 입안의 최종 결정기관이 책임회피성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책의 맞고 틀림 차원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어서 앞으로의 부동산시장이 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정책 ‘진정성’ 측면에서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의 부동산시장은 말 그대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됐었다. 부동산 통계마다차이가 있지만, 부동산114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 간 아파트값은 전국적으로 78.27%, 서울은 106.25% 상승해 그야말로 두 배 이상 오른 아파트들이 속출했다.
온 나라가 부동산 관련 불만으로 가득 차자 급기야 문 정부는 부동산 통계에까지 손을 댔다. 가장 정확해야 할 통계를 조작한 것이다.
지난 4월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정부 4년 간 총 102차례에 걸쳐 통계조작을 한 것이 밝혀졌다. 책임회피로 안돼 여론조작에까지 나선 것이다.
아파트값 통계조작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2018년 8월 24일 서울 아파트 주중 매매지수가 0.67%로 보고되자 청와대는 26~27일 이틀간 국토부와 부동산원에 연락해 용산과 여의도 개발계획 보류를 발표하라고 하고 8.27대책을 반영해 확정치를 낮추도록 지시했다. 부동산원이 이 지시를 받아 0.47%로 낮춰 보고했는데 청와대가 재검토 지시를 내려 결국 8월 28일 0.45%로 하향 조정 후 발표했다.
올해 6월 마지막주 서울 아파트값이 0.43% 상승해 2018년 9월 첫주 0.45% 이어 6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발표되고 있지만, 당시 0.45%는 원래 0.67%를 분식한 숫자로 한번의 조작이 두고두고 통계의 오류를 일으키는 사례를 보여준다.
문 정부 시절 용광로처럼 뜨거워진 부동산 시장,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원씩 오르는 아파트값으로 집 없는 사람들의 불만이 나라를 온통 뒤덮었으니 피할 곳 없는 정부나 청와대가 통계조작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정부 발표 통계와는 달리 매일 집값이 뛰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은 잘못된 정책 때문이지만, 그보다도 솔직하지 못한 청와대의 태도가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와 원인이 파악돼야 하는데 문제를 은폐하고 통계를 분식하는데 올바른 해법이 나올 리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진정성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6.27대출규제책을 둘러싸고 대통령실이나 대통령이 알았냐 몰랐냐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사전에 조율이 있거나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을 해놓고도 오리발을 내밀었다면 이재명 정부에서의 부동산정책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국정의 최종 책임은 국가 수반인 대통령이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장책결정의 최종 검토자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출규제책에 대해 대통령실과 관련 없다는 보도와 관련 SNS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힘들어진 서민이나 국민들의 민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백기사처럼 등장해 다소 완화시켜주는 연출을 하지 않겠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이런 발상은 이번 대책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모두 알고 사전에 조율했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3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 발표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가 발표했다고 해서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관계 없다고 생각한 국민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이재명 정권 초기인 만큼 솔직하게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주고 당당하게 정책을 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선을 다 한 결과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도 가능하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