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그는 24일(현지시간) CNBC 방송 인터뷰에서 "무역협상을 원하고 있는 한국이 일본 합의를 읽을 때 한국의 입에서 욕설(expletives)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경계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오만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고 트럼프의 생각이 읽힌다.
일본과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마무리되면서 다음 순서가 될 것으로 알려진 대한민국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과연 한국은 미국에게 얼마나 불이익을 당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다.
지정학적으로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비슷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무역협상 내용 역시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 미국의 태도를 보면 의외의 결과를 받아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사실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모든 것을 내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불평등 협상을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한국은 일본보다 더 악성 조건을 받아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면서 진작에 한일(韓日) 공조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은 미국 수출품에 대한 상호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대가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투자, 쌀을 포함한 농산물 개방, 알래스카LNG 개발을 위한 조인트벤처 참여, 보잉비행기 100대 수입 등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됐다.
일본이 지난해 미국을 상대로 얻은 무역흑자 규모가 685억달러인데, 5500억달러 투자는 무역흑자 규모의 8배에 달하는 금액으로서, 간단히 계산해 8년 간의 무역흑자액을 미국에 쏟아붓는 것을 말한다.
이번 투자에서 단서조항이 붙었는데, 투자이익의 90%는 미국에 잔류시키는 것으로 돼있다. 투자 분야는 에너지 인프라 및 생산, 반도체 제조 및 연구, 핵심광물 채굴 가공 정제, 제약 및 의료제품 생산, 상업용 및 방어용 선박 건조 등인데, 이들 분야는 우리나라도 강점이 있는 분야여서 역시 우리에게도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에 대해서는 쌀 수입 75% 즉시 확대, 미국산 옥수수, 대두, 비료, 바이오에탄올, 바이오 항공연료 등으로 80억달러를 구매하기로 했다. 역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미국산 쌀과 30개월 이상 된 소고기 수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협상조건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가 수차례 강조한 비관세장벽 철폐 역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강조한 비관세장벽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환율이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원화 가치를 낮춰서 수출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원화 평가절상(환율인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농식품 검역 완화, 온라인 플랫폼 규제 철폐, 기업투자나 조선·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 주한미군 분담금 상향 조정 등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가진 잇단 회동은 기업들 자체적으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간 12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150억원 안팎의 세금만 내는 구글에 대한 우리나라 고정밀 지도 반출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네이버 등 국내 포털 지도 대신 구글 지도로 길찾기가 가능해지면서 토종 포털들의 시장점유율이 대폭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구글은 최근 한국에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이 세번째로서, 구글이 요청하는 지도는 1:5000의 고정밀 지도 정보다. 현재는 1:25000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지도정보가 제공되고 있어서 골목 등은 검색이 불가능하다.
일본과의 협상 내용이 모두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미국은 일본에게 미국 국채를 매입해줄 것과 현재 보유하고 있는 미국국채를 매각하지 말 것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고, 역시 한국에 대해서도 같은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가장 큰 고민은 재정적자 해결인데,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두가지 카드가 관세인상과 국채 판매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 의회를 통과한 감세법(OBBBA)에 따라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는 5억달러 더 늘어났다. 결국 5억달러만큼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수 있게 됐는데, 그 국채를 누군가 사줘야 하는 상황이다.
25일로 예정됐던 한미 2+2 협상이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비행기 탑승 1시간 전에 미국의 일방적 통보로 취소된 가운데,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3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80여분간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단 미국의 요구조건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일본에 대한 조건보다 훨씬 강한 조건들을 베센트 재무장관이 추후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일단 협상에 임하는 미국측 대표단들의 태도가 안하무인인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2+2협상 임박해서 전화도 아닌 이메일로 성의없이 미팅 취소를 통보한 베센트의 태도에 더해, 한국에 대한 러트닉 장관의 발언을 보면 미국이 한국에 대해 얼마나 오만한지, 그리고 트럼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24일(현지시간) CNBC 방송 인터뷰에서 "무역협상을 원하고 있는 한국이 일본 합의를 읽을 때 한국의 입에서 욕설(expletives)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경계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동맨관계는 고사하고 외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태도와 발언이다.
러트닉의 이 발언을 볼 때 트럼프는 현재 한국과 일본을 경쟁시키면서 조건을 넣고 빼는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중국에 뺨 맞고 한국과 일본에 화풀이 하는 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강도 있게 공격했던 중국과의 무역협상은 현재 중국의 승리로 기울면서 막판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미국은 중국에 145%, 중국은 미국에 125% 관세를 부과했지만, 지난 5월 양국간 제네바 회담에서 90일간 각각 115%씩 낮추기로 합의한 후 오는 28~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차 무역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양국간 협상의 주요 조건인 중국의 희토류 대미 수출 금지 완화와 미국의 반도체 관련 수출금지가 어느 정도 풀리면서 트럼프가 한발 물러나는 선에서 최종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4년 기준 2954억달러의 무역적자국인 중국에는 백기를 드는 대신, 만만한 대미흑자 3위인 멕시코(1718억달러), 5위 베트남(1235억달러), 7위 일본(685억달러), 한국(660억달러) 등에는 가혹한 조건을 관철시키는 전략을 편 것이다.
무역적자 2위인 EU(2356억달러)와 6위 독일(848억달러)와는 비교적 정상적인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면서, 결국 전체적으로는 한국, 일본, 베트남, 멕시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만만한 나라들 중심으로 잇속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맹방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양국 국민들의 대미 정서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대두된다.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향후 양국간의 협력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