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수도시민경제
이재명 정부가 6월 4일 출범한 지 23일 만에 부동산대책 1호인 ‘6.27대출규제책’을 발표했다. 역대 집값을 가장 많이 올렸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0일 만에 발표한 부동산대책 1호인 ‘6.19대출규제책’ 보다 17일 빠른 역대 정부에서 가장 빠른 부동산대책을 내놓는 기록을 세웠다.
부동산 관련 주무 장관인 국토교통부장관과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 선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강력한 모습의 규제책을 내놓은 것을 보면 부동산시장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 지 충분히 읽힌다.
그러나 이번 ‘6.27대책’ 역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중심이었던 수요억제책이어서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문재인 정부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6.27대책은 대출규제 측면에서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은행들의 가계대출 총량을 강화한 것이 눈에 띈다.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총량목표를 계획대비 50% 줄이고, 디딤돌대출·생애최초구입자금 등 정책대출은 25% 줄여, 가계대출 관리에도 들어갔다.
대출규제를 통해 갭투자를 막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2주택 이상 보유자와 1주택자 모두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담보인정비율(LTV)을 0% 적용시켜 실질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막히게 됐다. 단 1주택자의 경우 주택 추가 매입시 기존주택을 6개월 이내에 처분하는 한도 내에서 비규제지역에서는 70%, 규제지역에서는 50%의 LTV를 적용 받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존주택 처분 기한이 2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무주택자를 포함해 주택담보대출의 상한은 6억원으로 막았다. 100억원짜리 집이 있고, 연 소득이 10억원이어서 상환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누구나 6억원을 넘지 못한다.
주택을 담보로 하는 생활자금대출도 최대 1억원으로 막았다. 집을 담보로 몇 억 대출을 받아 빵집 차리는 것도 어렵게 됐다.
신용대출 한도는 연 소득 최대 2배까지 허용됐었지만, 이번 대책으로 연 소득 이내까지만 허용된다.
청년들을 비롯한 신혼부부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생애최초 주택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기준인 LTV가 기존 80%에서 70%로 낮아졌다. 10억짜리 아파트를 마련하는데 과거 자기자금 2억원에서 3억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해당 주택이 수도권이나 규제지역 내에 있는 경우에는 6개월 이내에 전입을 해야 한다. 근래 확대되고 있는 20~30대 영끌 갭투자를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아파트 분양시장에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도금까지는 6억 대출 한도 적용을 받지 않지만, 잔금은 6억 이상 받을 수 없으니 고가아파트의 경우 잔금대출을 노리고 분양 받는 길이 막히게 된다.
정부가 서둘러 대출억제책을 내놓을 정도로 서울 아파트 시장을 뜨겁게 만든 것은 21주 연속으로 매매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갈수록 상승폭이 커지는 현상 때문이다.
올해 초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하면서 아파트값이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하자, 놀란 오 시장이 45일만에 서둘러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해서 재지정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시그널이 되면서 부동산시장은 쑥밭이 됐다. 거기에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세금 올려서 부동산 시장을 잡지 않겠다고 공약성 약속을 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자 부동산 시장은 터보엔진을 달게 된 것이다.
그런 결과로 뜨거워진 부동산 시장을 우선 대출을 강력하게 규제해 수요를 억제시키겠다는 의도인데, 결국 사지도 말고, 수요자가 없으니 팔지도 못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버린 결과를 만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첫 부동산 정책도 수요억제책이었는데 그때를 보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취임 40일 만인 2017년 6월 19일 ‘6.19대책’을 내놨는데 주요 골자는 LTV와 DTI(총부채상환비율)을 기존 70%에서 60%로 줄여 대출 한도를 줄였고,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전매금지를 시행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약 한달 반 후에 문 정부 가장 강력한 부동산대책인 ‘8.2대책’을 내놨다.
‘8.2대책’은 LTV와 DTI를 40%까지로 낮췄고 과열된 시장을 세분화해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역, 투기지역 등으로 나눠 규제를 가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부활시켜 강남 재건축 시장에 쐐기를 박았고, 분양권과 입주권 전매 규제 등 강력한 규제책을 폈다. 그리고 다주택자 규제를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당시 서울 아파트값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약 한달 후인 9월부터 아파트값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서울 외 수도권과 지방까지 확산됐다. 시장의 흐름을 막으면서 엉뚱한 곳에서 부작용이 일었다. 풍선효과이기도 하고 똘똘한 한채 현상이기도 했다. 문 정부는 결국 같은 해 ‘9.5대책’과 ’10.24’대책’ 등을 연이어 내놨다. 이때부터 대책 약발은 먹히지 않게 됐다.
문 대통령 취임 5개월 여 만에 4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놨고, 그로부터 시작된 부동산대책들로 부동산 시장은 누더기가 됐고, 집값을 역대 최고로 올린 정부가 됐다.
이번 ‘6.27대책’은 문 정부 ‘8.2대책’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수요억제책에 초점을 맞춘 것도 그렇고 대책을 짜는 과정도 비슷하다. 이번 대책도 기재부나 국토부 구성 전에 금융위원회와 은행들 그리고 보증기관들이 모여서 급조해서 만든 다분히 수요억제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대책이다. 2017년 ‘8.2대책’도 ‘6.19대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주거정책심의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몇몇이 모여 만든 졸속정책이란 손가락질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정책으로 일단 돈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장만하기 어렵게 됐다. 즉 서민들 집장만을 위한 주거사다리가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물론 6억까지 대출해서 본인 돈 6억을 더해 12억짜리 집을 장만할 수는 있지만, 금융권 대출총량제 등 걸림돌이 많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잠시 시장이 출렁이는 틈을 타서 현금을 동원해 얼마든지 갭투자에 나설 수 있어서 주거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대통령이 세금을 통한 부동산정책은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현금 많은 사람들은 고가의 부동산 투자에 마음 편히 나설 수 있게 됐다.
결국 시장은 고인 물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급감소로 인해 전월세시장이 불안해지고, 그로 인해 매매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부메랑 효과로 집값을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당장 부동산시장은 거래 측면에서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상승폭이 줄거나 보합 수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고단수로 내성이 생긴 시장은 이상한 곳에서 구멍이 뚫리고 생각지도 못한 현상으로 시장이 들썩일 수 있다.
인위적으로 구멍을 막으려다 수 없이 큰 홍수를 겪었다. 물길을 막으면 예상 밖의 재앙이 찾아오듯이 이번 정책에 따라 새로운 신조어가 나올 정도의 악몽이 되살아날 지 매우 우려된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