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의 묵시록' 중 한 장면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그 중 영화 평론가들은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년>, <디어 헌터(Deer Hunter) 1978년>, <플래툰(Platoon) 1986년>,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 1987년>, 그리고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 2002년>를 베트남 전쟁 영화 ‘Best 5’로 뽑는다. 다섯 중에서 가장 훌륭한 하나를 뽑으라면 대체로 <지옥의 묵시록>을 들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은 <대부(God Father)> 1, 2편과 더불어 1970년대를 대표할 영화라고 하겠다. (<지옥의 묵시록>은 워낙 유명해서 TV 영화 채널을 통해서 몇 번씩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 <지옥의 묵시록>과 <대부> 두 편을 제작 감독한 프랜시스 코폴라(Francis F. Coppola 1939~)는 당시 30대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코폴라는 이 세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다섯 편의 영화 중 가장 최근인 2002년에 개봉된 <위 워 솔저스>는 미군의 용기와 헌신을 긍정적으로 그린 ‘애국 영화’(patriotic movie)다. 미 1기병사단 7연대의 대대 병력이 실제로 겪었던 전투를 영화화한 <위 워 솔저스>에서 멜 깁슨이 할 무어 중령 역할로 나온다. 베트남 참전용사이기도 한 올리버 스톤이 작은 비용으로 제작해서 큰 성공을 거둔 <플래툰(Platoon) 1986년>, 그리고 역시 참전용사의 회고록을 토대로 스탠리 큐브닉이 감독한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 1987년>은 전쟁의 실상과 반전(反戰) 정서를 담고 있다.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잘 보여 준 <디어 헌터>는 1979년 초에 미국에서 개봉됐고, 그 해 여름에는 <지옥의 묵시록>이 개봉됐으니까 1979년 미국 영화계는 이 두 편이 대표했다고 할 만하다. 사람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겠으나 베트남 전쟁의 비극적 면모를 <디어 헌터> 만큼 잘 담아낸 영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과 <디어 헌터>는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 있던 1979년에 나왔다.

나는 이 두 편의 영화를 유학 첫 학기이던 1979년 가을에 대학 캠퍼스에서 보았다. 학부 학생회가 금요일 저녁에 대학 강당에서 문제작 영화를 상영했는데, 그 학기에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그리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해서 모두 보았다. 세 영화 모두 보고 난 기분이 혼란스럽고 우울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에 살던 평범한 세 젊은이가 조국의 부름을 받아 베트남으로 향하고 그로부터 벌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과정을 다룬 <디어 헌터>는 여러 장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오랫동안 여러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주인공 윌러드 대위(마틴 쉰)의 눈으로 본 전쟁의 광기(狂氣)를 헬기 기동부대(Air Mobile)를 이끈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벌)을 통해서 잘 보여주었는데,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영화에서 특히 납득이 되지 않았던 부분은 윌러드 대위가 탄 경비정(PB)의 대원이 작은 베트남 어선을 임검(臨檢)하다가 어민과 그 가족 전체를 사살해버리는 장면이었다. 지휘관인 윌러드 대위는 자신은 마치 관측자인 것처럼 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장교복을 벗은 지가 몇 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영화에 어떻게 미군 당국이 UH-1 헬기(휴이)를 빌려주었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헬기는 촬영지인 필리핀의 육군 헬기를 코폴라 감독이 빌려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필리핀 육군이 갖고 있는 헬기를 거의 모두 빌려서 찍었는데 제조사인 벨(Bell) 항공사 기술진이 현지에 와서 고쳐가면서 찍어서 헬기 성능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 국방부는 <탑 건>, <위 워 솔저스> 같은 ‘애국적 영화’가 아니면 장비를 제공하지 않는다.)

첫 학기가 끝나고 쉬는 동안에는 당시 최고 인기였던 영화 <로즈(The Rose)>를 보았다. 미국 영화관에서 본 첫 영화인데,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43~1970. 10)의 생애에 기초한 세미 픽션이었다. 조플린의 유가족은 조플린의 생애를 상업화하는데 반대했기 때문에 제작진은 가상의 배우 ‘로즈’를 주인공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인 1967~69년 동안 쥐어 짜내는 창법(唱法)으로 선풍을 일으킨 반(反)체제 반(反)문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조플린이 약물 중독으로 27세로 사망하자 우리나라 라디오 팝송 프로에서도 그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크게 다루었다. 영화 <로즈>에서 로즈 역은 베티 미들러(Betti Midler 1945~)가 했는데, 마리화나와 헤로인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지막에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아마도 베티 미들러가 남긴 최고의 작품은 <로즈>일 것이다.

1979년에 나와 크게 히트한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그리고 <로즈>는 굉장히 우울한 영화다. 외교 위기와 경제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고 미국인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던 그 시절이었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 반(反)체제 운동, 워터게이트로 이어진 ‘혼돈의 1960~70년대’를 상징했고, 암울했던 1979년은 그 시대를 마감하는 한 해였다. 1980년 새해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프라이머리로 시작됐다. 워터게이트 덕분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미국인들이 혹독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선택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45년 세월이 흘렀으나 그 시절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 것은 어떤 이유인지 모를 일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