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2구역 재건축 수주를 위해 압구정 아파트단지 앞에 만든 홍보관 '압구정 S. Lounge' 사진=삼성물산 건설부문

규모로나 위치로나 국내 최고의 아파트단지로 평가받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2구역 재건축 수주전에서 국내 건설공사 도급순위 1위인 삼성물산 건설무분(이후 삼성물산)과 2위 현대건설 간의 빅매치가 불발될 상황에 빠졌다. 올해 1월 한남4구역 수주전 이후 두 회사 간의 빅매치가 재현될 것에 대한 기대가 무산된 것이다.

압구정2구역 재건축 조합은 지난 18일 입찰공고를 낸 바 있는데, 이틀 뒤인 삼성물산이 입찰 참여 포기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인데, 건설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입찰 포기 선언 뒤에는 뭔가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 압구정2구역 입찰포기는 조합원 간 갈등 유발 의심

압구정2구역은 2571가구를 재건축하는 단지로 공사비만 2조7488억원에 달하고, 단지의 상징성은 국내 대표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삼성물산의 입찰 포기 선언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입구정2구역에 이어 곧바로 나오게 될 압구정3구역은 가구수나 공사비에 있어서 2구역의 두 배 수준인데, 2구역을 수주한 건설사가 3구역 수주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2구역 입찰포기 선언 뒤에는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물산은 입찰 포기 선언을 보도자료를 통해서 발표했는데, 일반적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찰하지 않겠다는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0일 『삼성물산, 압구정2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 불참』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당사는 압구정2구역을 전략사업장으로 선정하고 조합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파트 단지, 세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단지로 건립하기 위해 글로벌 건축디자이너, 금융사 협업 등 적극적으로 입찰 참여를 준비해왔다"면서 "하지만 조합의 입찰조건을 검토한 결과 이례적인 대안설계 및 금융조건 제한으로 인해 당사가 준비한 사항들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의 입찰 참여 포기에 대한 해명을 보면 그동안 삼성물산이 준비해온 내용들을 조합이 배제한 것에 대한 불만의 내용이 담겨있고,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입찰내용 상 경쟁대상인 현대건설에 유리한 입찰조건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번 압구정2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대의원회의에서 ▲대안설계 범위 대폭 제한 ▲모든 금리 CD+가산금리 형태로만 제시 ▲이주비 LTV 100% 이상 제안 불가 ▲추가이주비 금리 제안 불가 ▲기타 금융기법 등 활용 제안 불가 등 이례적인 입찰 지침을 통과시킨 바 있다.

입찰 가이드를 보면 조합이 과도한 수주경쟁으로 인한 과다한 공사비 증가 등 갈등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그러나 특별한 대안설계와 조합원에 대한 별도의 금융혜택 등을 준비해온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준비가 물거품이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면 될 것을 굳이 입찰 포기를 언론을 통해 공식화 한 것은 조합원 간의 갈등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삼성물산은 지난 5월 초 압구정 아파트 맞은편에 프라이빗 라운지 '압구정 S.Lounge'를 개관한데 이어 세계적 건축설계사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 (Foster+Partners)'와 손을 잡고 혁신적 대안설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또한 국내 건설사 중 유일한 최고 신용등급(AA+)을 배경으로 5대 시중은행 및 주요 대형 증권사와 협업을 통해 최상의 금융조건을 제공할 계획임도 밝혔다.

그러나 강남구청과 조합의 과열경쟁 방지 방침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미 강남구청은 홍보 과열 양상을 잠재우기 위해 각 사의 단지 버스투어나 개별 홍보 금지 등 제동을 걸었고, 조합은 시공자 홍보 활동지침을 통해 합동설명회 이외의 개별홍보 활동을 일절 금지했으며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기준과 개별홍보금지 및 홍보 기준 등을 준수하지 않으면 입찰 자격을 박탈한다고 경고했다.

‘압구정 현대’라는 브랜드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건설의 텃밭을 뺏기 위해 도전에 나선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조합의 이러한 입찰방침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해된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조합원들 간의 갈등을 유발시켜 어떻게 해서든 물꼬를 삼성물산 쪽으로 옮겨 판을 엎는 방법 말고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구역 대비 두 배 규모인 3구역 수주를 위한 일보 후퇴라는 시각도

또 한편으로는 추후 발주될 압구정3구역을 노리고 2구역에서 이미지를 부각시킨 후 발을 뺐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인접한 단지를 수주한 건설사에 대한 지역 내 반감이 크기 때문에, 인접 단지의 시공사 경쟁에서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많은 것이 건설업계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한남4구역에서도 현대건설이 삼성물산에게 패한 원인 중 하나가, 인접한 한남3구역을 시공하고 있는 현대건설에 대한 한남4구역 조합원들의 반감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2구역을 포기하고, 지금부터 3구역에 공을 들여, 2구역 대비 두배인 3구역을 수주하겠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압구정2구역은 2571가구에 공사비는 2조7488억원이지만, 3구역은 5175가구에 공사비는 6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3구역 조합원들이 2구역이 입찰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조건이 최고급 아파트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해, 삼성물산의 최고급 아파트 조건을 수용할 경우 3구역 입찰에서는 삼성물산이 현대건설의 아성을 깨고 입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압구정 아파트의 랜드마크는 3구역이 되고, 이어서 나오는 4, 5구역 입찰에서도 삼성물산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단, 8월 11일 입찰제안서 마감 때까지 삼성물산이 입찰제안서를 낼 지에 관심이 쏠리고, 그 사이에 조합원 간의 갈등 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압구정 2단치 시공사 선정 입찰 일정은 이달 26일 우후 2시에 현장설명회를 진행하고, 8월 11일 입찰제안서를 마감한 후 9월에 3차례에 걸쳐 시공사 합동설명회를 가진 후 시공사를 선정한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