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화폐시장을 점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제금융통화 시장에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가상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그동안은 비트코인을 비롯해서 가상화폐들이 교환과 가치척도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정성(Stable)이 확보되지 않는 등 높은 변동성으로 가상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는 논리는 한계에 부딪혀왔다.
그러나 이제 안정성이 확보된 스테이블코인이 나오면서 세계는 어쩌면 머지않아 단일통화체계가 될 가능성까지 열렸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패권을 이어간다
자칫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사용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 대표적인 달러연동 스테이블코인은 USDT(테더), USDC, BUSD 등이 있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가치 즉 달러인덱스와 연동돼 그날그날의 가치가 정해지기 때문에 달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면서 화폐로서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다.
이 외에도 비트코인 등 코인의 가치와 연동된 크립토 코인 담보형 스테이블코인,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 금 같은 상품을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코인 등이 있지만, 이들은 역시 달러에 비해 변동성이 심해 화폐로서 기능을 하는 데 한계점이 뚜렷하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지금까지 인류와 함께 한 5000년 화폐 역사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화폐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개껍데기로부터 시작해, 청동화폐를 거쳐 금 본위의 종이화폐까지가 현재 화폐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각국 간의 경제적 울타리 내에서 각 국의 화폐가 각 국의 통화정책에 의해 화폐의 가치(환율)를 정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외의 거래 매개수단으로 화폐가 기능을 해왔지만, 앞으로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단일 통화체계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월가의 유력 은행들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로 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미국 4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이 개인간의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P2P 결제 플랫폼인 ‘젤(Zelle)’을 운영하는 얼리 워닝 서비스(Early Warning Services)나 실시간 결제 네트워크인 ‘더 클리어링 하우스(The Clearing House)’ 등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화폐에다가 가상자산의 기능을 탑재한 혁명적 화폐라는 측면에서 확산 속도가 들불처럼 번질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그동안의 가상화폐들은 가치 변동이 심해 이들 가상화폐를 가지고 거래를 한 후 결제하는 시점에서의 가치가 달라지는 등 변동성으로 인해 가치척도나 교환비율의 안정성 측면에서 미흡함을 보였지만,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인덱스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오프라인 화폐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어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일반 화폐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다가 국제간 거래에 있어서도 환율 적용이 필요 없어 환차가 없고, 수수료도 적고, 속도도 빠른 온라인의 강점이 탑재돼있다. 중앙은행을 통하지 않아 거래 내용이 정부에 노출되지 않아 거래의 비밀도 보장받는다. 상속이나 증여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세금을 피해갈 수도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남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에서 외국인 구매자들은 스테이블코인 거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급속도로 힘을 얻는 이유는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가 배경이다. 36조22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미국 국가부채에 더해 매년 엄청난 재적적자를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하는데,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미국 국채를 사주지 않으면서 국채가격이 폭락하고 이자율이 올라가는 최악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국가부채인 국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코인 발행액만큼 달러나 미국 국채를 담보로 맡겨야 하는데, 결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미국 국채를 매입해 담보로 맡기면서 미국 국채 수요가 창출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된다면, 미국 국채 매수자가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아닌 전 세계 일반 대중이 되는 것이다. 물론 현재도 일반 개인이 미국 국채를 매입할 수 있지만, 일부에 그치고 그것도 장기적인 투자 개념으로 매입하는 것이지, 일상에서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처럼 사용하기 위해 매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차원이 달라진다.
■한국은 과연 원화 대신 스테이블코인에 종속될까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어떻게 될까에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크게는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 간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소위 IMF의 SDR(Special Drawing Rights)라고 하는 ‘특별인출권’에 들어있는 5개의 화폐를 기축통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SDR 구성은 달러 41.73%, 유로 30.93%, 위안화 10.92%, 엔화 8.33%, 파운드 8.09%로 구성돼있고, 이들 5개 화폐 이외의 화폐를 쓰는 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다.
이들 기축통화국들이 각각의 화폐를 1대1 교환비율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SDR의 지분만큼은 스테이블코인이 거래화폐로 기능을 하며 시장에 통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가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예 K-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을 경우 그 코인을 누가 이용해줄 것인가라는 문제를 안게된다.
이미 EU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침투를 막기 위해 유로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폐주권을 찾겠다는 것이다. SDR 비중이 30.93%에 달하니 그럴만한 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기축통화국 중 중국의 위안화는 경제규모가 크고 현재도 중국 내 달러에 대한 단속이 심해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엔화나 파운드화의 경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세계는 달러스테이블코인, 유로스테이블코인, 위안화스테이블코인 등 3개의 화폐로 나눠질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미국 상원에 올라있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인 지니어스(GENIUS)법 통과 여부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의 전세계 공격이 본격화될 것이다.
우리나라 화폐가 원화 대신 스테이블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고, 화폐식민지에 들어간다는 얘기도 되고, 한국은행의 역할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우리나라의 제 1무역 대상국이 미국이니까 달러스테이블코인 사용국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화폐는 그 나라 경제의 전부다.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표시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자칫 경제 구조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고, 힘의 논리가 바뀔 수도 있다.
이번 6.3대선 후보 토론에서 스테이블코인 얘기가 잠깐 나오기도 했지만, 후보들이 개념도 잘 모르고 입으로만 떠드는 것 같아서 참담함이 앞선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경제주권을 뺏길 수도 있는 현재 상황에 깜깜이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큰 걱정이다.
한국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미국의 재무부나 연준의 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날이 올 것에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