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이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법관에 대한 신분 보장과 독립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최우선 가치는 '재판의 공정성'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106조는 법관에 대한 강력한 신분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분과 독립 보장만으로는 재판의 공정성이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사건을 통해 경험적으로 배워왔다.
법관 독립의 의미와 한계
법관의 독립은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 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따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독립성이 변질될 위험도 존재한다. 법관의 독립은 결코 법관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따라서 법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지위를 남용한다면, 이는 오히려 법관 독립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이는 사법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법관 탄핵제도의 헌법적 의의
탄핵제도는 본질적으로 권력 통제 수단이다. 고위 공직자가 공적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를 방치한다면, 이 또한 헌법침해와 다를 바 없다. 특히 강한 신분 보장을 받는 법관들이 위헌•위법적 행위를 했을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헌법적 장치가 바로 탄핵제도이다.
제헌헌법 이래 우리 헌법은 일관되게 법관을 탄핵소추 대상으로 명시해왔다. 이는 법관이 헌법에 어긋나거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 일반적인 형사소추 기관이 소추하기 곤란하다는 현실적 한계를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유진오 당시 헌법기초위원장은 법관을 헌법상 탄핵소추 대상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신분이 보장되어 있음으로 그를 파면하기 심히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법관 탄핵은 사법권 독립 침해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법관 탄핵이 삼권분립 원리나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탄핵제도의 본질에 대한 오해이다. 탄핵제도는 법원의 재판작용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법관 개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절차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제도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수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정의했다. 법관 탄핵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관의 헌법질서 위반행위로부터 사법권의 본질인 '재판의 공정성'을 보호하는 장치인 셈이다. 법관에 대한 탄핵은 법관 독립성을 침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패한 일부 법관으로부터 사법부 전체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호하는 제도적 방어막인 것이다.
견제와 균형: 헌법의 기본원리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 원리다. 권력분립 원칙이란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작용을 여러 국가기관에 분산시켜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탄핵제도는 바로 그 균형추 역할을 한다. 만약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이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책임성 강화가 독립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법관의 책임성 강화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가 있을 때, 비로소 사법부의 독립은 정당성을 얻게 된다.
탄핵 제도가 법관들의 권력남용을 예방하고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탄핵소추는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관 독립의 정당성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법관에 대한 견제와 통제 또한 법관의 독립과 마찬가지로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다. 법관 독립의 궁극적 목적인 '재판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책임성 강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법관 탄핵제도의 의의와 필요성을 재고할 시점이다.
독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