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라는 데, 윈스턴 처칠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국가는 형체이고, 이 형체에 혼을 불어넣는 게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에 수많은 민족이 있었으나 현재 국가 형체를 유지하는 나라는 불과 200여 개입니다. 대부분 민족은 나라 형체를 만들지 못했고, 역사도 잃어버렸습니다.
역사를 인식하는 데 있어 역사의식이 강한 나라가 있고, 역사의식이 약한 나라가 있습니다. 자기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나라가 있고, 자기 역사를 흐릿하게 아는 나라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학생들도 우리 역사를 일관성 있게 설명하기 힘들어하는 ‘역사의식이 약한 나라’로 꼽힙니다. 학창 시절 역사를 시공간의 개념 즉 입체적으로 보지 않고 그저 ‘외우는 과목’으로만 보기 때문일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특히 약한 분야가 ‘일본 식민지’가 포함된 근대 역사입니다. 근대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 아니면 근대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근대 역사를 조금 알지만 그나마 자의적으로 해석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일제 식민지’로의 전락이 우리 탓이며 광복 이후 진정한 대한민국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로 우파 보수의 시각 같습니다. 19세기 조선은 나라 꼴이 엉망이었으며, 일제 치하를 거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반면에 ‘일제 식민지’로의 전락은 외세 탓이며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태어났다는 시각으로 대체로 좌파 진보라는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그들은 ‘조선의 후진성’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왜곡되거나 조작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조선은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어도 발전할 수 있었다는 식의 ‘국뽕 역사관’을 보입니다. 국뽕(국가+히로뽕) 역사관이란 자기 나라에 대한 환상과 맹목적인 찬양을 말하는데, 이들은 19세기 각종 자료나 기록이 가리키는 사실마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근대 역사에 대한 일치된 해석이 없으니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통일된 시각이 구축되지 못했고, 이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신’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역사를 잊으니 국혼(國魂)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입니다.
‘국가 정신의 부재’는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자존감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국민이라면 반드시 국가에 대해 납세(納稅)와 국방(國防)의 두 가지 의무를 집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고도 큰소리를 치고, 국방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도 권력을 탐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국가 정신의 부재’로 국가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이 약하다 보니 다른 나라가 대한민국을 멸시해도 별로 화를 내지 않고,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연평도를 폭격해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특히 좌파 진보세력이라는 사람이 더욱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미국인들은 국민을 지칭할 때 시민이라는 말 이외에 납세자(taxpayer)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한 장병들은 물론 예비역 장병까지 엄청난 수준으로 대우합니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데서 미국의 힘이 나옵니다. ‘미국의 영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여전히 위풍당당합니다.
서구 문화와 문명의 원형이 된 로마에서 ‘국방과 납세는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였습니다. 그 힘으로 로마는 무려 2200년이나 존속했습니다.
한국인의 자기 비하, 특히 좌파 진보라는 사람들의 대한민국 비하는 정도를 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앞서는 상황이 왔는데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전제인 ‘자기 책임의 원칙’을 부정하면서 남 탓과 정부 탓을 합니다. 얼마 전 읽은 농담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을 알게 된 여러 나라 아내들의 반응입니다.
‘러시아 아내는 남편을 총으로 쏩니다. 미국 아내는 남편을 고소합니다. 영국 아내는 모른 척합니다. 이탈리아 아내는 남편을 죽입니다. 프랑스 아내는 남편의 정부(情婦)를 죽입니다. 스페인 아내는 둘 다 죽입니다. 독일 아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본인이 죽어버린답니다. 중국 아내는 맞바람을 피웁니다. 일본 아내는 남편이 바람피운 상대를 만나 사정합니다. 그러면 한국 아내는? 대통령과 정부가 책임지라고 아우성을 피운답니다.’
‘국가와 정부’는 한국인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의 애국심은 과연 어떤 수준이고 어떤 의미일까요?
코라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