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대선 정국 속에 해군 초계기(哨戒機) P-3 Orion이 추락해서 승조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아군 P-3가 추락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종이지만 해상 경계와 대잠(對潛) 작전에 매우 중요한 기종이다. P-3는 미국 록히드 항공사가 제작한 해군용 항공기로 해상 초계는 물론이고 잠수함을 추적해서 공격할 수 있다. 해안에 위치한 지상 기지에서 발진하며 항속 거리와 체공시간이 길다. 하와이 플로리다 등지에 배치해서 운용을 해온 미국 외에 일본이 이 기종을 많이 도입했고 일본은 기술이전으로 자체 생산도 했다. 방어해야 할 수역(水域)이 광활한 일본에게 가장 적절한 기종이다.
우리 해군은 1970년대 들어서 자체 항공전력을 갖추고자 했으나 타군의 견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프랑스로부터 ALT-III 헬기를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S-2 Tracker를 들여와서 해군에 항공단이 생겼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할 수 있는 쌍발 프로펠러 S-2는 그러만 항공사가 제작한 대잠 초계기였다. (그러만은 해군 항공기를 주로 제작했고 영화 <톱 건>에 나오는 F-14도 그러만이 제작했다.)
이렇게 1970년대 중반에 들어온 S-2는 미 해군에서 퇴역한 중고 비행기였다. S-2 덕분에 해군도 고정익 항공기를 운영하게 됐으나 중고 항공기라서 고장이 많았다. 그런 탓인지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해상 초계 비행을 하던 S-2가 한쪽 엔진이 갑자기 서버린 것이다. 지상 지휘소에선 낙하산으로 탈출하라고 지시했으나 조종사는 엔진 한 개로 포항기지에 착륙하겠다고 했다. 기지에 가까워져서 고도가 낮아지는 순간에 작동 중이던 엔진도 스톱을 해서 추락하고 말았다. 승조원 4명은 전원 사망했다. 부조종사는 미혼인 중위였고, 조종사는 두 살이 된 아이가 있는 대위였다. (장교복을 입고 찍은 아버지 사진을 보고 자랐을 그 어린이는 지금 50세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날 해군은 전체가 초상집이었다. 새 비행기를 도입한 일본과 달리 가난한 나라 한국은 중고를 도입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비극적 사고를 경험했으나 S-2는 북한 간첩선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남해 상공에서 초계 비행을 하던 S-2기가 이상한 작은 어선을 발견했다. 통상적으로 어선들은 무리를 이루면서 다니는데, 홀로 항해하는 그 어선은 엔진이 두 개라서 스크류 웨이크가 두 갈래였다. 작은 어선에 엔진이 두 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조종사는 지휘소에 연락을 했고 부근에 있던 고속경비정이 출동했다. 경비정이 나타나자 그 수상한 어선은 전속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해군 고속정이 추격했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우리 고속정은 당시 신무기였던 20밀리 벌컨(Vulcan) 기관포가 장착돼 있었다. 북한 간첩선은 벌컨포를 맞고 대파(大破)되어 바다로 갈아 앉았다. 그 날 해군은 축제 분위기였다. 해군이 독자적으로 적선(敵船)을 발견해서 격파했으니 그럴 만 했다. 하지만 그 날 교전 중 스무 살 나이의 젊은 하사가 전사했다.
1977년 초 여름에 대통령 별장이 있는 진해만 저도(猪島) 부근에 북한 간첩선이 침투해서 아군 경비정에 총격을 가하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해군은 그 경비정을 잡지 못해서 해군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참모총장은 청와대에 불려가서 질책을 당했다. 박 대통령은 참모총장을 경질하지는 않았고 앞으로 잘 하라고 격려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눈썰미 좋은 S-2 조종사와 고속경비정 대원들 덕분에 해군은 진해만에서 있었던 굴욕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번영과 평화가 있기까지 이런 일들이 있었다.
미국은 P-3를 퇴역시켰고 후속 기종인 보잉 포세이던이 해상초계를 담당하고 있다. 항모에서 운용했던 S-2는 1970년대 말에 퇴역했고 후속 모델인 제트 초계기 S-3 Viking이 바톤을 이었다. S-3가 뉴스를 크게 탄 적이 있다. 2003년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점령하자 의기양양해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항공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착륙해서 연설을 했다. 항모에는 ‘Mission Accomplished'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렸다. 그날 조지 W. 부시가 탄 항공기가 S-3였다. S-3는 제트 엔진 항공기이지만 F-14이나 F-18 같은 초음속 전폭기가 아니기 때문에 속력도 늦고 항모 착륙도 쉽다. 텍사스 주 방위군 조종사로 병역을 한 부시는 부조종사 자리에 앉아 비행을 했다. 부시는 아마도 창공에서 비행을 할 때에 조종간을 잠시 잡았을 것이다. 항모 착륙은 가장 긴장되고 어려운 과정이니까 주조종사인 해군 파일롯이 조종간을 잡았을 것이다. (해군 조종사들은 적지에서 폭격을 할 때보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에 착륙할 때가 더 긴장이 된다고 한다.) 부시는 조종사 복장을 하고 폼을 잡았으나 ‘Mission Accomplished'은 ’3일 천하‘였다. 순니파 폭탄테러가 연이어 발생하자 언론은 ‘Mission NOT Accomplished'라고 비꼬았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