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리얼미터)

여론조사원이 전화를 걸어 "1975년 공공사무법에 대한 의견을 알려주세요"라고 물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처음 듣는 법안 같지만, 뭔가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듭니다. 그래서 "음... 찬성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방금 여러분은 존재하지도 않는 법안에 의견을 제시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응답 압력: 설문조사의 숨겨진 힘

1986년 발표된 한 연구는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이 "모른다"고 말하는 대신 의견을 제시하도록 만드는 '응답 압력(pressure to answer)'의 실체를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질문 방식에 따라 가짜 의견의 비율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존재하지 않는 세 가지 가상의 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질문했습니다.

- 방식 A: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필터 질문)

- 방식 B: 바로 의견을 물어보고, 무응답 시 추가 질문 없음

- 방식 C: 바로 의견을 물어보고, 무응답 시 답변을 유도하는 추가 질문 제시

충격적인 결과: 질문 방식의 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 방식 A(필터 질문): 3-14%만 가짜 의견 제시

- 방식 B(직접 질문): 22-38%가 가짜 의견 제시

- 방식 C(답변 유도): 31-55%가 가짜 의견 제시

이는 응답 압력이 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잘 모르시겠다면, 그래도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와 같은 추가 질문을 했을 때 가짜 의견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누가 응답 압력에 더 취약할까?

연구 결과, 특정 집단이 응답 압력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었거나 교육 기회가 적었던 집단일수록 이러한 압력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모른다"고 말하기 더 어려워함

- 흑인 응답자: 백인 응답자보다 응답 압력에 더 민감하게 반응

-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이 적은 사람들: 주제에 대해 잘 모를수록 의견을 제시하라는 압력에 취약

응답 압력 줄이기

연구자들은 응답 압력을 줄이고 더 정확한 여론조사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합니다.

- 필터 질문 사용: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보셨습니까?"와 같은 예비 질문 도입

- "모름" 응답 정당화: "이 주제에 대해 모르시면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됩니다"와 같은 안내 제공

- 답변 유도 최소화: 무응답 시 추가적인 답변 유도를 삼가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 질문 난이도 조정: 일반 시민이 답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전문적인 질문 피하기

이 연구 결과는 오늘날의 여론조사와 미디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이 여론조사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 조성이나 일상 대화에서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는 문화 형성 등입니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른다’는 응답도 매우 가치 있는 정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대중이 어떤 주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정책 수립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여론조사를 위해, 응답 압력을 줄이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신문

<참고문헌>

Bishop, G. F., Tuchfarber, A. J., & Oldendick, R. W. (1986). Opinions on fictitious issues: The pressure to answer survey questions. Public Opinion Quarterly, 50(2), 24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