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사옥. 사진=SK
트럼프 발 관세폭탄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산에 따른 경기둔화 조짐과 미국의 본격적인 석유 개발 등 유가하락 요인이 늘면서 석유화학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규모의 석유화학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적자전환 하면서 회사가 비상경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올해 국내는 물론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른 에너지 소비 위축이 결국 실적부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SK이노베이션이 선제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향후 환율변동(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실적개선도 예상되면서 하반기 SK이노베이션의 실적에 청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 고통분담 강하게 요구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지난 7일 전체 임직원에게 이메일 레터를 통해 “우리 스스로 일터를 지켜내겠다는 자강의 자세로 SK이노베이션 계열을 더 강한 회사로, 더 좋은 일류 회사로 만들어 가자”고 강조하면서 우선 선제적으로 계열 CEO들이 연봉 최대 30% 반납할 것을 밝혀 비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서 박 사장은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불황과 관세 전쟁 등 비우호적 경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생존부등식’을 지키고 미래 에너지 시대를 준비해 SK이노베이션을 더 강한 회사로 만들자”며 구성원을 독려했다. 사장단의 희생에 이은 임원진 전체의 고통분담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 사장은 “저를 비롯한 리더들이 생존부등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답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일하는 방식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불요불급한 비용 최소화 등 일상의 노력이 모일 때 큰 힘을 만들 수 있다”며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즉 ‘지난이행’의 마음가짐이 절실한 때”라고 덧붙였다. 지난이행은 올해 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사자성어다.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는 Sk이노베이션은 우선 사장단 연봉을 최대 30% 반납하기로 하면서 전 임원의 출근시간을 오전 7시로 앞당기고 주 6일제 근무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비용 절감 측면에서 임원 해외출장 시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를 전 계열사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임원들의 이코노미석 탑승은 그동안 계열 내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온에서만 적용돼왔다.
여기에 임원들의 업무추진비도 대폭 줄일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비상경영 기조는 결국 사장단 이외의 임원들 연봉 반납과 직원들 전체의 고통분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장단 연봉 30% 반납 대상은 박 사장을 비롯해 추형욱 SK이노베이션 E&S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 이상민 SK아이이테크놀로지 사장 등이다.
■계열사 전반적인 실적 부진…일부 기업 적자폭 감소는 다소 위안
SK이노베이션이 비상경영에 돌입한 배경은 올 1분기 446억원의 적자를 낸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사업을 담당하는 알짜 에너지 회사 SK E&S를 지난해 말 합병하며 1분기 매출(21조1466억원)은 2022년 3분기 이후 10분기 만에 가장 많았지만, SK온(-2993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696억원), SK지오센트릭(-1143억원) 등 주요 계열사들이 영업적자를 낸 탓이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6247억원 대비 적자 전환한 것으로, 반짝 흑자전환에 성공했던 지난해 4분기 1599억원과 비교해도 1개 분기 만에 2045억원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 실적이 급감한 데는 주력 사업인 석유 부문 수익성이 악화된 영향이 컸다. 올 1분기 SK이노의 석유 부문 매출액은 11조9181억원, 영업익은 363억원에 그쳤다.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와 OPEC+(석유수출기구플러스) 감산 완화 등으로 인해 국제 유가와 정제 마진이 동반 하락하면서 직전 분기 대비 영업익이 감소한 것으로 해석한다.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SK온은 올 1분기 매출 1조6054억원, 영업손실 299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다만 적자 폭은 직전 분기 대비 601억원 개선돼 회복 기미를 보였다.
화학 부문은 매출액 2조4770억원, 영업손실 1143억원을 기록했다. 파라자일렌(PX)과 올레핀 계열 시황 약세 등으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적자를 지속했다. 다만 적자 폭은 301억원 줄었다.
윤활유 부문은 매출 9277억원, 영업익 1214억원을 기록했고, 석유개발 사업은 매출액 3831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소폭 늘었지만 영업익은 직전 분기 대비 254억원 줄어든 1204억원에 그쳤다.
그 외 소재 사업은 매출 238억원, 영업손실 548억원을 기록했지만 적자 폭을 전 분기 대비 193억원 줄였다.
한편 지난해 11월 합병한 SK E&S는 매출 3조7521억원, 영업익은 1931억원으로 영업익이 전 분기 대비 789억원 늘어 효자 노릇을 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관세폭탄으로 인해 글로벌 경기 둔화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계속 내려 잡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미국의 전기차 외면 정책이 이어지면서 배터리사업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미국이 대미 무역흑자국들에 대한 화폐가치 상승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환율인하가 진행될 경우 석유사업 부문 실적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 하반기 Sk이노베이션 실적 개선도 예상해 볼만 하다”고 짚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