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 신흥국 중심으로 달러 대비 화폐가치가 급등하는 등 환율변동이 심해졌다. 트럼프가 미국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1985년 실시한 플라자합의같은 환율조정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관세폭탄의 목적으로 거론돼왔던 환율에 비상이 걸렸다. 7일 외환시장 개장과 함께 우리나라 원화는 달러대비 25.3원 급락한 1380.0원을 기록해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미 지난 이틀간의 휴장기간인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Non-Deliverable Forward)시장에서 원화값은 달러당 1372.9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환율급락은 예고된 것이었다. 본격적인 달러약세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폭탄 협상에 대비하느라 온 힘을 쏟는 가운데 환율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분석해보면 트럼프가 관세보다는 환율을 통해 무역적자를 해소하려는 의도가 보여 환율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원화가치가 급등한 배경으로는 단기적으로는 대만 달러의 급작스런 초강세 때문이다. 대만 달러는 지난 1일 달러당 32.12대만 달러에서 5일 29.17대만 달러로 2거래일 사이 9.2% 급등했다. 30년 만의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대만 달러의 초강세로 인해 수출로 먹고사는 비슷한 처지인 한국 포함 동남아국가들의 환율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국 달러당 7.75~7.85 홍콩 달러로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제를 채택한 홍콩은 며칠 새 7.75달러 선 밑으로 움직이자, 홍콩당국이 2거래일 간 1166억 홍콩 달러(한화 약 21조원)를 팔면서 시장에 개입했다.
중국 위안화는 11월 이후 처음으로 달러 대비 7.2위안 밑으로 떨어지면서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화, 싱가포르 달러, 위안화 외에도 말레이시아 링깃을 비롯한 신흥국 통화들의 가치를 단기간 동반 급등시켰다. 이에 달러 대비 24개 신흥국 통화가치를 나타내는 ‘MSCI 신흥국통화지수’는 5일 장중 1830포인트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만 달러의 급등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대만이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환율을 포기하는 대신 관세 유예를 선택했다는 소문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즉 대만이 대미 수출관세 폭탄을 피하는 대신 환율인하 즉 대만 달러의 가치를 평가절상 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선물환 시장에서 달러대비 환율이 급락한 것이다.
대만 달러의 급등으로 인한 신흥국들 환율이 하락한 배경으로 대만 생명보험사들의 환 헤지(위험 회피)를 이유로 들고있다.
이들 생보사들이 대만 달러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한국의 원화를 비롯해 싱가포르 달러, 홍콩 달러 등을 환 헤지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주변국 화폐가치를 끌어올렸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의 화폐가치 상승 배경에는 대미 무역흑자에 따른 미국의 환율 조정 압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즉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무역의존도가 높고, 특히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트럼프 관세폭탄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고,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달러 대비 각국의 화폐가치를 크게 올려 미국 무역적자 규모를 줄여줘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 3월 무역수지를 보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 크게 늘어나 한달간 1405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봐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
3월 한 달간 대미 무역흑자국을 보면 EU(27개국) 483억달러, 아일랜드 293억달러, 중국 248억달러, 멕시코 168억달러, 스위스 147억달러, 베트남 141억달러, 대만 87억달러, 인도 77억달러, 독일 75억달러, 한국 68억달러, 일본 58억달러, 캐나다 44억달러 등이다.
한국은 순위에서 지난해 8위에서 10위로 밀렸지만, 금액상으로는 역대 최고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미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내놓은 관세폭탄이 오히려 미국 무역적자 규모를 역대급으로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3월 무역적자 규모를 기준으로 연간 계산해보면 올해 미국 무역적자는 1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무역적자 1조달러 대비 70%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단 7월까지 트럼프 상호관세가 유예돼있기 때문에 4월부터 6월까지 미국의 사재기 수입물량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7월에 가서 상호관세 협상 결론이 날 경우 일대 무역시장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부작용이 많은 관세보다는 같은 효과를 내면서 부작용이 적은 환율 조정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를 20% 부과하는 것과 환율을 20% 내리는 것 모두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같은데 반해 관세는 시장 탄력성이 떨어지는데 반해 환율은 시장흐름을 맞추면서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환율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상대국들 간에는 관세로 인한 혼란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일단 환율인하로 인해 대미 무역수지는 크게 악화할 것으로 보이면서 수출주도의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예상된다. 반면 외국 자본 유입으로 인한 주식시장이나 금융시장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 미국 레이건의 플라자합의 재현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1985년 엄청난 무역적자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어려움을 겪던 미국은 플라자합의를 통해 미국의 달러가치를 떨어트리고 일본을 비롯해 서독, 프랑스, 영국 등의 화폐가치를 크게 올려놓았다
그 결과 일본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은 그로부터 30년의 잃어버린 시절을 겪게 됐다.
이제 미국과의 경제전쟁은 관세보다 환율이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