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31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정 회장은 트럼프 취임 기부금 100만달러를 지불한 후 거액의 투자계획도 제시했지만 결국 자동차와 철강에 대한 25% 관세폭탄을 맞았다.
우리 여러 기업들이 지난 1월 20일 있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큰 금액의 기부금을 낸 것이 뒤늦게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이 100만달러를 기금으로 낸 것은 알려졌지만, 삼성을 비롯한 다른 기업의 이름이 기부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꼼수 기부라는 지적과 함께 배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치 기부금은 자국인이나 자국 기업만이 할 수 있는데, 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법인 명의로 기부를 한 것이고, 기업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경영자 개인의 사적 목적으로 기부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대문이다.
이번 47대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의 취임식 관련 기부금은 2억3900만달러(약 3400억원)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액을 기록했다.
거액 기부자 명단에는 미국의 내노라하는 기업과 유명 인사들이 올라있다. 자동차 기업으로 포드와 GM이 각각 100만달러씩, 반도체기업으로 퀄컴, 마이크론, 엔비디아 등이 각각 100만달러씩을 냈고 애플의 팀 쿡은 개인 자격으로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 외에 원유회사 셰브론이 200만달러, 엑슨모빌 100만달러, 화이자 100만달러 등 석유 및 제약사들도 거액 기부행렬에 동참했다.
소매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도 200만달러, 그리고 암호화폐 기업 코인베이스와 솔라나가 100만달러씩을 기부했다.
이 외에도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인 아마존, 구글, 메타 등이 각각 100만달러씩을 기부해 트럼프와의 화해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미 항공우주국 수장에 오른 제러드 아이작먼이 200만달러, 교육부장관 린다 맥마흔 100만달러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 25만달러,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이 104만7000달러 등을 기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고액 기부자 명단에 한국의 기업들 상당수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현대차가 100만달러, 삼성전자가 31만5000달러, 한화디펜스 50만달러, 한화큐셀 50만달러, 쿠팡 100만달러, 김명예 KCPA 회장 20만달러 등이다.
모두 미국법인을 통해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기부자 중 한화디펜스와 한화큐셀 각각 50만달러는 추후 반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환 사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트럼프에게 갖다 바친 배경이야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기부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기부에 있어 국내 기부는 공시를 통해 밝히도록 돼있지만, 외국 기부는 국내 공시의무가 없어 외국에서 밝혀지기 전에는 기부 사실을 알 수 없는 구조로 돼있다.
이번 국내 기업들의 기부금 내역도 미국 행정부가 대통령 취임 90일 내에 200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을 공개하도록 규정이 돼있기 때문에 밝혀진 것이다.
미국 법률상 정치기부금은 미국 기업이나 미국인으로부터만 받게 돼있기 때문에 이번 국내 기업들의 기부행위는 모두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서 이뤄졌다.
우리 기업들이 트럼프의 보호무역을 위한 관세폭탄을 피해가기 위해 기부금을 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100만달러를 기부금으로 내고 트럼프의 품목별 관세폭탄 발표 전에 31조원 투자계획서를 들로 백악관을 찾아갔지만, 며칠후 25%의 관세폭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삼성전자 역시 31만5000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놓고는 한마디도 없다가 미국 행정부 발표로 기부내역이 밝혀진 것인데, 역시 트럼프 관세폭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한화 김동관 부회장과 쿠팡의 김범석 회장은 100만달러씩을 기부하고는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해 밴스 부통령이나 트럼프 주요 참모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것 말고는 별로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결국 과시용 기부라는 지적을 받게 됐다.
실제 미국 대통령 취임 관련 기부금은 대통령 당선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취임식 관련 기부금은 규정상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문화사업에 쓰도록 돼있는데, 해당 대통령은 문화사업 선정이나 운영 과정에 전혀 개입할 수 없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기부금의 규모는 단지 해당 대통령의 세를 과시하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기부금은 실제 트럼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외국기업은 기부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피해 현지법인을 통해 ‘꼼수’ 기부했지만, 결국 트럼프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트럼프의 세 과시를 시켜주고 자신들도 기념사진을 찍어 세 과시를 하는 데 기업의 돈을 쓴 결과가 됐다.
개인이 아닌 기업의 돈을 사용할 때는 분명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만일 효과도 없이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세 과시용 사진 찍기 목적으로 거액을 사용했다면, 이것은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 전문가는 “현대차, 삼성, 한화, 쿠팡 등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관련 거액의 기부금을 냈지만, 결국 현대차는 엄청난 투자계획서를 갖다 바치고도 고율의 관세는 관세대로 두들겨 맞고, 삼성도 반도체 등에서 혜택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회사 이익과 상관없는 개인 친분 쌓기 목적으로 회삿돈을 사용한 것이 된다”면서 “이 돈은 기업의 이익이 돼 국내 배당으로 들어올 돈이기 때문에 명백한 배임이 될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