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31조원 미국 내 투자를 발표한 이후인 2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미국에 210억달러(한화 약 3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이유는 트럼프의 관세폭탄을 피해가기 위한 대안이었지만, 그로부터 이틀 뒤인 26일 트럼프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해 이번주 4월 2일(현지시간)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 일괄적으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관세 부과 국가를 아직 발표하기 전이지만,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벌어가는 15개 나라인 더티15(Dirty 15)에 한국이 포함되기 때문에 현대기아차가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현대차의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를 피해갈 수 있겠지만, 현재 한국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현대·기아차의 물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정 회장이 당장 효과는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익 없는 투자약속으로 발목만 잡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트럼프가 내린 행정명령은 오는 4월 2일부터 수입산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며, 단 미국·캐나다·멕시코협정(USMAC)을 인정해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들여오는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만 조건부 면세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정 회장이 거액의 투자발표를 한 지 딱 이틀 만에 트럼프는 정 회장의 뒤통수를 때린 격이 된 것으로, 미국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은 현대기아차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연간 자동차 수요량은 2024년 기준으로 1600만대 정도인데, 그 중 약 절반인 800만대 정도의 자동차가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멕시코로 296만2000대로 36.9%, 다음이 한국으로 153만6000대를 수출하는데 미국 수입차 중 19.1%다. 이어서 일본 137만7000대로 17.2%, 캐나다 106만5000대로 13.3%이며, 독일과 그 외 나라들이 총 100만대 정도를 수출한다.

미국에 자동차 수출 세계 2위 국인 대한민국에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게 됐는데, 특히 우리나라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기아차가 국내 및 멕시코 등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연간 100만대를 훨씬 넘기기 때문에 관세폭탄으로 인한 손실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 김영훈 수석애널리스트는 “미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자동차산업 밸류체인(자동차, 자동차부품, 2차전지 등)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자동차는 2024년 기준 전체 대미 수출의 26.8%, 무역수지 흑자의 약 60%를 차지하는 등 국내 무역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수출품목인 만큼, 국내 자동차산업을 넘어서 내수 경기 전반에도 일정 부분 파장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에 대한 공급은 미국 현지생산 총 56만6000대이고,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98만5000대, 멕시코에서 생산해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물량이 15만7000대다. 여기에 미국 현지생산물량 역시 상당한 부품이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기 때문에 부품에 대한 관세분을 포함할 경우 미국 내 생산 자동차 역시 타격이 예상된다.

결국 2024년 기준으로 오는 4월 2일부터 트럼프 관세 25%를 적용받는 물량은 114만2000대가 된다. 미국이 수입하는 자동차 총계의 약 1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며, 현대차기아차의 미국 판매차량 중 3분의 2는 관세리스크에 노출되게 됐다.

미국 수출 물량에 대한 관세타격이 현대차그룹 전체 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대기아차가 생산하는 총 자동차 매출의 40% 이상이 북미시장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판매량 대비 생산량 비중에서도 현대기아차는 현저히 낮은 편이어서 관세로 인한 타격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해 기준 현대기아차의 미국내 생산량은 판매량 대비 42%에 불과해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인 66%에 크게 못미친다. 대한민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GM도 미국 현지생산비중이 64%이고 포드는 99%, 일본 혼다는 72%, 토요타 54%, 르노닛산 57%다. 가장 낮은 폭스바겐은 24%인데, 폭스바겐의 주력 판매시장은 미국이 아닌 중국과 유럽이다.

결국 전체 판매량이나 매출에서 차지하는 미국 의존도에 있어서 현대기아차가 그로벌 자동차메이커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만큼, 당장 이번주부터 부과되는 자동차 25% 보편관세의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트럼프의 자동차 관세폭탄을 선언하기 이틀 전에 210억달러의 엄청난 투자계획을 트럼프 앞에서 다짐한 만큼, 관세는 관세대로 맞고 투자는 투자대로 해야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산업계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너무 서둘렀다는 지적을 한다. 트럼프가 오락가락 맛보기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좀 더 벌면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 줄다리기를 더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계 한 전문가는 “트럼프는 이미 재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2~3년만 정면충돌 없이 상황 전개에 따라 원포인트 대책으로 응대하는 것이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인데, 정의선 회장이 너무 서둘러서 투자계획을 약속해 곧바로 트럼프의 먹잇감이 된 것 같다”면서 “최소한 트럼프가 관세부과 시점으로 거론한 4월 2일은 넘겨서 투자관련 협의만 했어도 더 좋은 협상결과를 이끌어 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