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만과 전세계 파트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엔비디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IT) 바람회인 ‘컴퓨텍스 2025’가 오늘 23일 4일 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막을 내린다. 이번 전시회는 한마디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제국 구축’의 의미를 가진다는 측면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난강전시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 주제는 ‘인공지능(AI) 넥스트’로, 전 세계 29개국, 약 1400여개 기업이 참가했고, 4800여개 부스가 차려졌다. 한국에서는 엔비디아에 HBM반도체를 납품하고 있는 SK하이닉스와 더불어 삼성디스플레이가 부스를 설치했다.

이 박람회는 1981년부터 시작됐지만, 올해의 행사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전 세계 AI용반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 젠슨 황의 행보 때문이다.

지난 16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디-미국 투자포럼을 통해 블랙웰 AI칩 1만8000개(약 6억3000만 달러) 수출을 성사시키고 대만으로 날아온 젠슨 황은 대만 도착 이튿날인 17일부터 눈길을 끄는 행보를 보여왔다.

젠슨 황의 행보를 보면, 이번 트럼프 보호무역주의를 기점으로 AI생태계의 중심축을 미국에서 대만으로 옮기는 첫발을 뗀 것으로 풀이된다.

젠슨 황은 17일 저녁 타이베이 시내 한 전통식당에서 가진 엔비디아의 대만 협력기업들 대표와 만찬 자리에서 “이 멤버 안에서는 속이거나 싸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엔비디아는 기술 공급을 끊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는 대만 기업들 중심으로 AI슈퍼컴퓨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고, 현재 대만 기술 수준이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세계 시장에 알리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제국을 꾸리면서 각 제후들에게 불문율을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젠슨 황이 미국 트럼프 관세 및 무역정책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대만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 구상을 밝힌 직접적인 배경은 트럼프가 지난달 엔비디아 AI용 반도체 칩 H20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엔비디아는 지난달 15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에서 중국용 H20의 재고, 구매 약정, 준비금 등과 관련해 최대 약 55억 달러(약 7조 6800억 원)의 비용이 2026 회계연도 1분기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노선을 바꿔 AI 반도체 수출규제를 폐기했지만 과거 규제의 여파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업체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이미 바이든 시절부터 고 사양의 AI반도체 칩의 중국 수출을 막아왔고, 이번 트럼프의 저사양 칩까지 제한하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IT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지배력이 크게 낮아졌다.

젠슨 황은 “4년 전 95%에 달하던 중국 시장 점유율이 지금은 50%로 떨어졌고 사양이 낮은 제품만 팔면서 평균판매단가(ASP) 하락으로 수익도 많이 잃었다”며 미국 정부의 규제를 비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고, 그에따라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기술기업들이 중국 비즈니스가 감소하는 한편, 오히려 중국의 추격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미 올해 초 중국이 내놓은 생성형 오픈AI인 ‘딥시크’는 세계를 놀라게 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젠슨 황은 규제가 많은 미국을 떠나 기술 자립도가 높고, 미국과도 우호적이면서 중국과는 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을 AI반도체 허브로 구축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AI반도체 관련해서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는 설계와 영업만 하고 있고, 칩 생산은 대만의 TSMC, 반도체 후공정인 테스트와 패키징은 대만의 ASE, 데이터센터 조립은 대만의 폭스콘 등이 담당하고 있다. TSMC가 제작하는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인 HBM은 SK하이닉스가 담당하고 있다.

결국 엔비디아만 미국에서 대만으로 근거지를 옮기면, AI용 반도체 생태계는 완전히 대만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대만의 여러 기술기업들은 이미 세계 1위 수준에 올라있다. TSMC는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세계 1위, 미디어텍은 반도체 설계 세계 1위, ASE는 반도체 패키징 세계 1위, 폭스콘은 AI서버 제조 세계 1위, 에이스피드는 AI서버용 기판관리콘트롤러 세계 시장 80% 점유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젠슨 황의 엔비디아의 대만 사옥 구상 발표는 AI반도체 허브를 대만으로 옮기는 것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젠슨 황은 지난 19일 ‘컴퓨텍스 2025’ 기조연설에서 대만에 건설될 신사옥 '엔비디아 컨스텔레이션(NVIDIA Constellation, 별자리)'을 공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본사와 맞먹는 1만5000평 규모로 조만간 착공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AI반도체 설계, 로보틱스, 양자컴퓨팅 등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가 주요 시설로 들어간다.

이번 대만 사옥 발표를 두고 한마디로 ‘엔비디아 대만’이라는 독자 생태계 구축 프로젝트의 정점을 찍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젠슨황의 ‘엔비디아 대만’ AI 제국에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다. SK하이닉스가 HBM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미국 인텔의 새 CEO인 대만계 립부탄이 ‘엔비디아 대만’ 제국에 합류하는 분위기여서 앞날은 어떻게 변할 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젠슨 황의 올해 아시아 출장 일정을 보면 중요한 한·중·일 3개국 가운데 한국만 빠져있다. 한국과 크게 볼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7일에는 중국 경제 실세인 허리펑 부총리를 만났고, 이어서 4월 20일에는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AI로봇한업을 논의했다.

젠슨 황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가져갈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정부, 기업을 비롯해서 관련 연구기관들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 그리고 인재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올해 한국의 AI 민간 투자 금액은 13억3000만달러로 세계 11위에 그쳤는데, 미국의 1090억달러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고, 중국의 93억달러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AI생태계 구축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될 정도다”면서 “대학 역시 최 상위권 인재들이 공과대학이나 기초과학 관련 학과에 가지 않고 모두 의과대학 관련 학과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첨단 기술을 떠받치는 기반인 돈과 인재가 모두 빈약해 미래가 더욱 어두운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