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둔화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관세폭탄이 4월부터 시작되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표 기업 오너들은 3월 마지막 주를 바쁜 일정으로 보냈다.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의 이재용 회장은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데 반해, 2위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국내 3위 그룹 SK의 최태원 회장은 국내 경제단체장들과 함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나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역대 최악의 경영실적을 보인 재계 4위 LG의 구광모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30여 명을 이천 LG인화원에 불러 LG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등 대한민국 대표 오너들은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시진핑 만난 이재용…중국 본격 공략?
지난 22일부터 중국 출장에 나서 24일과 25일 양일간 열린 중국발전포럼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전기자동차 세계 1위에 등극한 BYD(비야디)와 샤오미 공장을 방문하는 등 전장(자동차용 전자·전기장비) 사업 협력을 위한 행보를 보인데 이어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博鰲) 포럼’에 참여해 글로벌 주요 CEO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어 지난 28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세계 유력 CEO들을 초청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글로벌 CEO 면담’에 참여해 시 주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이 회장을 비롯한 글로벌 CEO들에게 “중국은 외국 기업인들에게 이상적이고 안전하며 유망한 투자처’라고 강조하면서 투자유치를 요청했다. 시 주석은 미국의 트럼프가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선포하고 공포감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시 주석이 마련한 자리에는 글로벌 기업 CEO 30여 명이 참석했는데 국내 기업인으로는 이재용 회장과 SK하이닉스의 곽노정 사장 등 두 사람이 참석했다.
시 주석이 글로벌 기업 CEO들에게 중국 투자 확대를 요청하면서 향후 삼성의 중국사업 확대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이 회장 입장에서는 국제 정세 불안과 기술 패권 경쟁 등으로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따른 한국과 중국의 연대 필요성이 생긴 만큼 향후 대중 투자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31조원 투자 카드 들고 백악관 찾은 정의선, 해법이 될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간) 210억달러(한화 약 31조원)이 담긴 현지 투자계획서를 들고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찾았다.
트럼프의 관세폭탄, 특히 자동차에 대한 25% 보편관세가 예고된 상황에서 향후 4년에 걸쳐 총 21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인데, 자동차 외에도 물류 및 철강 분야에까지 확대해 투자를 약속했다.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 현지생산 120만대 체제 구축을 위해 86억달러, 부품·물류·철강 부문에 61억달러, 미래산업·에너지 분야에 63억 달러 등이다.
정 회장 입장에서는 현대차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 미국이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얻고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 중에서는 미국 관세폭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미국 투자카드를 든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210억 달러를 투자, 역대 최대 규모 신규 투자를 발표해 기쁘게 생각하며, 철강과 부품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미국 공급망 강화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투자배경을 설명하면서 ”미국 내 더 안정적이고 자립적 자동차 공급망 토대가 될 현대제철의 수십억 달러 투자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 투자는 관세가 매우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며 “현대차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투자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25% 관세가 예고돼있어서, 정 회장의 투자 벌표카드를 너무 일찍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최태원, 경제6단체장과 상법개정안 거부권 요청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국내 경제6단체장의 리더 입장으로 각 단체장들과 함께 현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손에 넘겨진 상법개정안 거부권 요구를 위해 한 대행을 찾았다.
개정된 상법이 시행되면 경영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키고, 소액주주 단체 등 시민단체들의 사사건건 시비에 정상적인 기업경영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27일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 요구를 위해 한 대행을 찾은 경제단체장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이다.
이 자리에서 경제단체장들은 “통상환경 변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우리 경제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면서 “상법 개정안은 우리 경제와 기업에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금융감독원 이복현 원장 등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한 대행이 무턱대고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 사회적 반감 역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기업들의 주주무시 정책으로 인한 일반투자자들의 불만이 많은 만큼, 이사회가 대주주 등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의사결정이 아닌 주주가치고 고려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구광모 LG 회장
■구광모, 사장단 불러모아놓고 위기극복 위한 ‘변화’ 강조
2024년 그룹 계열사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은 지난 27일 경기도 이천의 LG인화원에 계열사 사장단 30여 명을 모아놓고 그룹의 위기상황을 강조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한 ‘변화’를 요구했다.
변화를 서두르라는 의도로 ‘골드 타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변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현재 LG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심각성을 상기시켰다.
이어서 “일부 사업의 경우, 양적 성장과 조직 생존 논리에 치중하며 경쟁력이 하락해 기대했던 포트폴리오 고도화의 모습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이런 모습이 그동안의 관성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박감을 갖고 과거의 관성, 전략과 실행의 불일치를 떨쳐내라”며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대안을 구체화하고 단순히 ‘할 수 있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해야 하는 것’ 중심으로 실체적인 변화를 이끌라”고 주문했다.
실제 LG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의 지난해 경영성적은 심각할 정도로 나빠졌다. LG그룹의 모회사 격인 LG화학은 지난해 563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2023년 1조8523억원 영업흑자에서 적자 전환했다..
2020년에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9046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해 2023년 1조486억원 영업흑자에서 적자 전환했다. .
LG디스플레이는 적자 규모는 줄였지만 여전히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560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는데, 2023년 2조5102억원, 2022년 2조850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해, 지난 3년 간 영업적자 누계가 5조원을 넘어섰다.
구 회장은 하루 전날인 ㈜LG 주주총회에서도 ‘변화와 혁신의 골드 타임’을 강조할 정도로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의리와 인화를 강조해온 LG가 속도감 있게 변화의 모습을 보일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