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권력의 핵으로 불리는 대검찰청. 사진=수도시민경제

윤석열에 대한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고 정권이 민주당으로 간다면 검찰은 그야말로 존폐 위기에 서게 된다. 야권/진보에선 검찰청을 해체하고 기소청(起訴廳)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검찰이 미워도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청’이란 기구를 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알 수 없다. 검찰청은 영어로 'Prosecutor's Office'인데, 그러면 기소청은 영어 간판을 'Indictor's Office'로 붙일 것인가? 그러다간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야권/진보에서 공수처라는 기구를 만들고 수사권을 박탈하고 제한하는 것을 검찰개혁으로 추진했는데, 그 부작용은 이번에 드러났다. 검찰개혁을 하자는 사람들은 질적 개혁에만 몰두했고 양적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수사 검사가 많고 검찰수사관이 많은 나라도 없을 듯하다. 또 우리나라는 검찰청 문턱이 매우 낮다. 국회의원들은 툭하면 고소 고발장을 누런 봉투에 넣고 검찰청에 가서 기념촬영을 한다. 일반인들도 고소 고발을 검찰에 많이 한다. 검수완박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지방검찰청에는 민원인들이 넘쳐흘렀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검찰을 비난하면서도 경찰 보다는 검찰을 더 신뢰했거나 경찰 위에 검찰이 있다고 생각해 온 것 같다.

이제는 틀려버렸으나 나는 검찰 개혁은 양적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편이다. 즉 검사 숫자를 줄이고 검찰 수사관 숫자는 더 줄여서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는 경우를 자연스럽게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경찰보다 우세한 지위에서 수사 주체가 된 데는 5공화국 말기에 박종철 사망 같은 사건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노태우 정권은 그야말로 검찰 전성시대였고 그 추세는 그 후에도 계속됐다. 1990년대부터는 공직비리와 경제범죄의 비중이 커져서 검찰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에 과감하게 이관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검찰은 비대해졌고 그것이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이 너무 커졌다.

그러다 보니까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정작 본인들은 누런 봉투에 고소 고발장을 들고 검찰을 들락날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기사를 쓰는 언론도 가관이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기자는 ‘역사의 초안’을 쓴다고 말하는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검찰이 ‘역사의 초안’을 쓴다고 생각하고 검찰 수사를 알아내서 기사화 하는 것을 자기들의 업무로 알고 있다. 받아쓰기에 길들여진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부터 사법제도에 관심을 가졌던 내가 보기에 우리 검찰 제도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도무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의원내각제에선 정치인이 법무장관을 하기 때문에 검찰총장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대통령이 법조인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는 대통령제에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우리 헌법은 원래 의원내각제였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막판에 고집을 부려서 대통령제로 바꾸었고, 그래서 부통령도 있고 국무총리로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복기, 이호, 황산덕 등 명망가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하고 군 법무관 출신인 신직수를 검찰총장으로 기용했다. 법무장관 보다는 검찰총장이 실세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적 임명인 법무장관과 달리 검찰총장은 검찰권의 독립을 지킬 것이라는 것이 검찰총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모양인데,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서 검찰권을 행사했던 검찰총장은 오직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윤석열이었다. 그것을 보고 보수 유권자들이 너무 감동한 나머지 그를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로 영입해서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었다. 그러니 대통령제 국가에서 도무지 검찰총장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둘째, 법원은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이 있지만 검찰도 지검, 고검 그리고 대검으로 3단계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대검의 많은 업무는 태반이 법무부 업무와 중첩되기 때문에 하나로 합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한다. 지검에서 잘 나가던 검사가 고검으로 발령을 받으면 좌천됐다고 본다. 윤석열도 박근혜 정권 말기에 고검으로 좌천을 당했다. 그렇다면 이런 조직을 구태여 존치할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열리면 고검 검사가 나가야 한다고 보는 모양인데, 어떤 사건이든 처음에 수사하고 기소한 지검 검사가 그 사건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고등법원에 항소하는 경우도 지검 검사가 담당하면 되고, 혹시 그 검사의 역량이 딸린다면 다른 지검 검사를 보강하면 된다.

미국은 법무장관(US Attorney General)이 있고 그 휘하 각 지역에 연방검사장(US Attorney)이 있다. 주 정부에는 직선으로 뽑는 주 법무장관이 있고 지역에는 역시 직선으로 뽑는 검사장(District Attorney)가 있을 뿐이다. 더 중요한 점은 법무장관이나 주 법무장관이 검사장에게 개별 사건에 부당한 지시를 하면 그 자체가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를 구성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연방이든 주이든 중요한 재판은 1심이다. 1심 재판이 상급법원에서 번복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영미법에선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배심원이 매수됐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검찰은 더 이상 항소할 수 없다. O. J. 심슨 재판도 1심에서 무죄가 나와서 사건은 종결됐고 담당 검사 두 사람은 사표를 내 버렸다. 이것이 2중 처벌 금지의 원칙(Double Jeopardy Rule)로, 우리 같은 대륙법계의 일사부재리와는 다르다.

영미법계가 아닌 대륙법계 형사재판에선 1심에서 무죄가 나와도 검찰은 항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1심에 무죄가 나온 경우에 검찰이 항소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무죄가 나오거나 형량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검찰은 무조건 항소한다. 고등법원에서도 1심과 같은 판결이 나오면 검찰은 무조건 대법원에 상고한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나오면 검찰은 “대법원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둘러댄다. 무죄가 확정되면 그것은 법원의 잘못이고 무리하게 기소한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검사들은 어차피 국가에서 봉급을 받아가면서 항소도 하고 상고도 하지만 당사자들은 자기 돈을 들여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검찰과 싸워야 하다. 천신만고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사람들은 재벌이 아닌 이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항소권을 남용한 검찰이 문재인 정권에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 정권 하의 윤석열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던 이병기, 조윤선, 양승태 등이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면은 보지 못하고 한국의 보수라는 사람들이 조국을 기소한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윤석열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더니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도 검찰의 항소권을 대폭 제한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라틴 계통의 대륙법 국가에선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경우가 흔해서 이태리 시칠리아에선 마피아가 검사들을 암살하곤 했다. 반면에 영미법계에선, 대체로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지 않지만 재판에 임하기 위해서 영장청구와 압수 수색, 그리고 기소와 재판에 이르기까지 수사 경찰과 긴밀하게 협력을 한다.

특별한 경우에는 검찰이 중심이 되어 FBI나 경찰과 함께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검찰은 이처럼 수사도 하고 수사지휘도 할 수 있으나 통상적인 경우에는 하지 않을 뿐이다. 수사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되어 있는 나라는 우리뿐일 듯하니 참으로 기가 찬 노릇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