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사옥. 현대건설이 부산 가덕도신공항 공사 관련 실시설계 과정에서 설계회사들에게 계약도 없이 작업을 시키고, 작업 완료 시점에 단가를 조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직원들의 '근태일지'까지 요구하는 등 갑질로 인해 설계업체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당장 굶게 생겼습니다. 그동안 설계회사를 운영해왔지만, 이번 부산 가덕도 신공항공사 기본설계에 서브로 참여하면서, 대기업의 갑질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참고있지 다시는 이 회사랑 일할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현재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시공을 맡아 추진하고 있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공사의 기본설계에 참여한 한 설계회사 대표의 목멘 소리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공사는 지난해 10월 15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수의로 수주한 이후 약 6개월 일정으로 기본설계가 진행 중이다. 공사비 규모가 10조원을 넘기는 대형공사이다 보니 메인 설계회사가 4곳에 서브 설계회사는 총 30여개에 달한다.

문제는 30여 개에 달하는 서브 설계회사들이 계약도 없이 설계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작업 종료를 앞두고 현대건설이 투입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갑질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기본설계는 오는 4월 28일 끝날 예정이고, 기본설계도서를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에 납품하면 약 한 달 동안 적격심사를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 일정 상 이미 기본설계 작업은 종료됐고, 마지막 마무리 작업만 남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설계 작업 내용에 대해 계약은커녕 단가조정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설계를 비롯한 하도급 공사는 우선 계약을 하고, 그 계약에 따라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작업 기성(작업의 진행 과정)에 따라 2~3차례 나눠서 대금을 지급받는 형식인데, 현대건설은 일단 작업을 시킨 후 작업이 마무리 되는 시기에 와서 가격을 조정한 후 계약을 맺는 말 그대로 ‘갑질’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서브 설계업체로 참여하고 있는 A 대표는 “계약을 맺지않고 작업을 먼저 시키는 것부터가 하도급법 위반이고, 더욱이 설계비 산정에서 조달청의 품셈 기준보다도 크게 낮은 ‘적정단가’를 적용해 내역서를 작성했는데, 현대건설 측에서 인건비에 대한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요청하고 심지어는 작업자의 근태 일지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하니 이것이야 말로 대기업의 ‘갑질’이 아닐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서 “가뜩이나 건설경기가 어려워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시점에 계약도 없이 6개월을 인력과 용품을 투입해 중도금도 없이 일을 해왔는데 이제와서 단가를 깎자면서 직원들 근태일지까지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 최고 큰 건설사가 할 짓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대금을 받지 못하고 일을 시키면서 돈 빌려서 직원들 월급 주고 관리비 충당하고 했는데, 회사 사정이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계약 맺기를 요구했고 중도금 지급 및 적정단가 인정을 요구했지만, 현대건설 측은 전혀 들어주지 않아 더 이상 현대건설과는 일 할 생각이 없어졌고, 공정거래위원회나 감사원 등에 고소·고발을 하고 싶지만, 이 바닥에서 자칫 매장당할까 겁나서 이렇게 익명으로 언론에 제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가덕도 신공항 기본설계는 서울 종로구 세운스퀘어에서 합동설계단을 꾸려 진행되고 있는데, 메인 설계사는 대영엔지니어링, 알지오, 한국항만, 경동엔지니어링 등 4곳이고, 그 외 상주 서브설계사는 20여 곳, 비상주 설계사 10곳 등 약 35개의 설계사들이 투입됐다.

세운스퀘어 합동설계사무소 작업 인원만 최대 300명 정도에 이른다.

건설업계 관례상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대형 설계사인 4곳과 계약을 맺고, 대형 설계사들이 서브 설계사들과 재하청 계약을 맺는 방식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현대건설이 직접 나서서 서브 설계사들의 단가까지 관여하면서 서브 설계사들은 어느 업체도 계약을 맺지 못한 상황이다. 메인 설계사 4곳도 이번달 초에서야 현대건설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비용은 대형 설계사 4곳은 회사당 수십억원 규모이고, 서브 설계사들은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아야 몇 억원 수준이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사진=부산시

가덕도 신공항 설계 일정은 이번 달 말 기본설계 결과를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에 제출해 약 1개월 간 적격심사를 받은 후 6개월 간 실시설계를 하게 되고, 실시설계에 대한 2개월 간의 심의를 마치게 되면, 본계약을 하고 공식 착공을 하게 된다.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는 10조5300억원 규모로,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4차례의 공개입찰이 유찰되면서 단독 입찰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지난해 10월 15일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공사다.

당시 10조가 넘는 공사를 한 달에 한 번씩 입찰을 하는 졸속 입찰 과정을 두고도 지적이 잇따랐고, 당초 현대건설과 경쟁구도를 형성했건 대우건설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합류하면서 경쟁구도가 깨진 것을 두고도 일종의 담합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현대건설의 수의계약 배경을 두고 당시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한남동 관저 공사를 현대건설이 마무리해주면서 김건희 여사의 애로사항을 해소시켜주고, 과거 대통령이 사용하던 안가들을 복원시켜주면서 현대건설과 현대차그룹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눈에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보는 등 건설업계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하도급법을 위반해가면서 하도업체의 단가를 후려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대건설 같은 대형 건설사가 어려우면 중소 하도업체들은 생존이 어려울 지경이라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다 아는데, 법을 위반해가면서까지 하도업체에게 ‘갑질’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나 정치권에서 나서서 잘못을 잡아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