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크롬 재질의 기둥은 지붕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벼워서 떠 있는 지붕을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의 독일관 모습. 부족한 듯 하면서 디테일이 살아있다.
사소함에 집착하여 20세기 건축에 획을 그은 사람이 독일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난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1886-1969)다. 그는 192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 독일관을 건축하도록 위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심연에 몰입하는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자신의 철학과 카리스마를 물건으로 표현하였다. 그가 건축한 독일관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없다. 커다란 투명 유리와 반투명 대리석으로 가득한 이 구조물을 잡고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식 기둥들이다.
미스는 자신의 예술정신을 담은 두 명언으로도 유명하다. 하나는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문장이다. 자신의 건물에서 군더더기를 가려내 과감히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소중하게 남겼다. 다른 하나는 ‘신은 사소한 것들에 있다’(God is in details)라는 문장이다.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가 논문에서 오자를 발견할 때마다 내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미스가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면, 그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다. 그의 건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극히 사소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소한 것을 무시하는 행위는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인 우주를 무시하는 행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눈송이는 저 멀리서 빛나는 별만큼 완벽하다. 아침 이슬의 구조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큼 숭고하다. 파르테논 신전의 수많은 벽돌 하나하나도 자신의 완벽한 크기와 위치를 알고 있다. 사소한 벽돌이 모여, 자연스럽게 위대한 파르테논 신전으로 태어났다. 사소는 위대한 전체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다.
허망한 사람은 거대담론에 집착하고 위대한 과업을 무모하게 시도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을 무시하거나 얕본다. 그는 자화자찬에 중독되어 불가능한 일을 꿈꾸기 때문에, 자신과 주위를 돌보는 겸손이 없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에게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사소한 일에 몰입한다. 그는 대중의 환호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지혜로워진다. 그는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장악하여, 정직, 진실, 배려를 실천한다.
덜 함의 이치와 사소한 것의 힘을 이해하는 것이 비단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의 무책임할 정도의 무모함과 과장됨을 볼 때 특히 귀감아 들어야 할 얘기라고 생각한다.
코라시아,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