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운 공수처장. 대통령 임기 말에 급조한 심야입법으로 탄생한 공수처의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 이유를 법과 제도의 탓으로 돌리고 법과 제도를 바꾸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생각만 하면 다행인데, 어떤 계기로 국회에서 그런 식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면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만다. 법과 제도를 확 바꾸자고 주장하는 측은 대체로 말해서 이상향(理想鄕)을 꿈꾸는 ‘진보’다. 요즘 검찰과 공수처가 헤매고 있는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 말에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치고받고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적이 있다. 법무장관 두 사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당해내지 못하더니 결국 윤석열이 상대방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됐다. 그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동시에 경질하던가 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장관을 경질할 수 있으나 검찰총장을 경질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속수무책으로 있으니까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해서 윤석열의 몸값만 올려놓았다.

그런 지경이 된 배경은 검찰총장의 임기가 2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고위 정무직에 임기를 정해 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 이는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정하면 그가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고 검찰을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인데, 이런 주장을 내세운 쪽은 물론 ‘진보’였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민주당이 주장해서 관철시킨 소중한 개혁입법이었다.

미국의 연방검사장(US Attorney)은 임기가 4년이고, FBI 국장은 임기가 10년으로 법에 정해져 있으나 대통령은 임기 도중이라도 해임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렇게 하지 않지만 트럼프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민주당 정부가 임명한 검사장을 마구 해고했다. 미국 대법원은 위원회가 아닌 독임제 정무직 공무원의 해임을 제한하는 법률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100년 전에 판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기 2년인 3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은 임기 도중에도 해임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는데 검찰총장의 경우에는 그런 단서 조항이 없어서 검찰총장을 임기 중 해임하기는 어렵다고 해석이 된다. 민주당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이 같은 개혁입법 때문에 윤석열을 해임하지 못하는 수난을 겪은 것이다.

이번 윤석열 구속 취소도 그 장르가 똑 같다. 20대 국회 마지막 순간에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절차를 통해 무리하게 통과시킨 법률이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이다. 그 중 연동형 비례제는 위성정당을 등장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노정하고 말았고, 공수처는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이번 윤석열 내란 기소 사태를 맞았다. 공수처는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야권, 즉 진보진영에서 신앙처럼 내세웠던 검찰개혁안의 핵심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우습게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처럼 검사가 많고 검찰청에 수사관이 많은 나라는 드물다. 우리 검찰은 수사와 기소에 있어서 과다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 1심에 무죄가 나오며 항소하고 2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상고하고 대법원이 무죄로 판결하면 납득할 수 없다고 둘러대는 식이다. 검찰권의 남용은 문재인 정권의 윤석열 검찰에서도 그대로였으니 검찰개혁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은 우습게 되고 말았다. 또한 윤석열 검찰은 실로 ‘양날의 검’과 같았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려고 했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탄생을 앞두고 검찰수사권 완전박탈법을 만들어서 국회를 통과시켰고,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만료 며칠을 앞두고 이 법에 서명해서 법률로 만들었다.

새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성급하게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행태를 흔히 ‘심야 입법’(midnight legisl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거스를 뿐만 아니라 이런 법안 자체가 급조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주 좋지 않은 행태다. 무엇보다 검찰권을 휘둘렀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검찰권력을 억제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비판을 들을만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검찰의 문제는 너무나 비대한 조직이라는데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방치하고 검찰의 수사 대상을 대폭 축소했으니 그 많은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청을 만든다는 발상도 너무 낭만적이다. 우리나라처럼 검사들의 본업이 수사인 나라도 드물지만 검사가 공소유지만 하고 수사는 물론이고 수사 지휘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발상도 희한한 구상이다. 통상적인 경우는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지만 검사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려면 수사단계부터 수사기관과 협력하고 공조해야 만 한다.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검사를 필두로 한 수사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경찰수사가 미비하다고 생각하면 검사장은 수사를 지휘하기도 한다. 미국의 연방검찰은 FBI와 긴밀하게 공조하고, 지방검사(DA)는 경찰과 역시 긴밀하게 협력한다. 배심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선 검찰과 경찰은 정말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멀어질 대로 멀어진 우리의 검찰과 경찰이 그러한 공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석열 구속 취소 사건은 어설픈 검찰개혁이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비판을 아프게 받아드려야 한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