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가 심히 흔들리는 것 같아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 법원이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을 제외하면 세계 대부분의 민주국가에는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그 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을 내리는 주권적 특권(sovereign prerogative)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흔들린다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심각한 문제다.
엄격히 말한다면 헌법재판소가 1987년 개헌으로 처음 도입된 것도 아니다. 4.19 후 헌법 개정을 통해 의원내각제 개헌이 이루어 졌는데, 그 때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에 들어왔다. 1960년 6월 15일자로 개정된 헌법 제83조 3~4는 위헌심사, 권한쟁의, 정당해산, 탄핵심판을 하기 위한 헌법재판소를 두며, 헌법재판소는 임기 6년인 9명의 심판관으로 구성되며, 대통령, 대법원, 참의원이 각 3인을 선임하도록 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내각(국무원)을 구성하는 민의원에게 헌재 심판관 선임권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구성도 하지 못하고 5.16이 발생해서 2공화국은 문을 닫고 말았다.
5.16 세력이 주도한 1963년 헌법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일반 법원이 법률의 위헌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미국과 일본을 따라서 사법심사제를 도입한 것이다. 5,16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인식이 없었고, 당시 조진만(趙鎭萬) 대법원장이 미국식으로 사법심사권을 법원이 갖고자 해서 헌법심의위원회에 대법원을 대표해서 파견된 이영섭(李英燮) 대법관을 통해 관철시켰다. 그러나 1971년에 대법원이 국가배상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함에 10월 유신 후에는 위헌법률심사권을 유명무실한 헌법위원회에 부여했다.
1987년 개헌은 위헌법률심사권 등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했다. 현행 헌법재판소의 권한은 4.19후 2공 헌법에 등장했던 헌법재판소와 거의 같다. 다만 독일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는 추상적 규범통제권은 부여하지 않았고 헌법소원을 도입한 것이 달랐다. 1987년 개헌 때는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지 않겠다고 해서 유럽 대륙식의 헌법재판소를 두기로 했다. 당시 대법원은 사법부가 위헌심사권을 갖게 되면 대법원이 정치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1987년 개헌 논의가 있을 때 헌법학자들은 헌법재판소를 두는 방안을 지지했다. 헌법재판소를 두고 변호사 자격이 없더라도 법학교수를 20년 이상하면 헌재 재판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교수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87년 헌법은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각 3인 선임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대통령의 헌재 재판관 임명 행위가 국가원수로서 의례적인 것이냐, 아니면 대통령이 대법원과 국회가 선임한 재판관을 임명하기를 거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이번에 발생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재판관 임명을 거부함에 따라 민주당이 한덕수 대행을 탄핵해서 최상목 부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게 되었다.
1960년 2공 헌법은 대통령, 대법원. 참의원이 헌재 심판관을 각 3인 선임한다고 규정한데 비해 1987년 헌법은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우리나라 중진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독일의 헌법재판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서울대 김철수(金哲洙) 교수, 엊그제 헌재를 심하게 비판한 허영(許營) 연세대 명예교수가 모두 독일에서 공부한 헌법학자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헌재의 권한과 구성에 대해선 독일 외에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헌법재판소도 참조를 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6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하원이 절반을 그리고 상원이 절반을 선임한다. 독일 헌재 재판관들은 그 직에서 물러나면 다른 공직을 맡지 않는다. 이 점에서 헌재 재판관이나 대법관을 지낸 사람이 헌재와 법원에 변호사로서 등장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소장, 부소장, 재판관 12명, 예비재판관 6명으로 구성된다. 내각은 소장, 부소장, 재판관 6명, 예비재판관 3명을 지명하며, 하원은 재판관 3명과 예비재판관 1명을, 상원은 재판관 3명과 예비재판관 1명을 지명하고 대통령은 이들을 임명한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국민직선으로 선출되고 헌법 조문으로는 몇 가지 중요한 권한을 갖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의례적인 국가원수일 뿐이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는 행위는 대사 임명처럼 국가원수로서 하는 의례적인 것이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대통령이 5명을 지명하고, 의회가 5명, 그리고 사법부가 5명을 선출한다. 재판소장은 재판관들이 자체적으로 선출한다. 이탈리아는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의례적 권한만 갖고 있는데, 헌재 재판관 5명을 지명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부여한 큰 권한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재판소 구성은, 대통령, 의회, 사법부가 각기 1/3씩 선출하는 이탈리아와 가장 닮았으나 우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오스트리아와 닮았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는 행위는 국가원수로서의 하는 의례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석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