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이심슨 재판 과정을 다룬 넷플릭스의 도큐먼트인 시리즈 장면.

우리나라는 검찰은 물론이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진 것 같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검사와 판사에 대한 불신이 많다 보니 우리도 미국처럼 배심제도를 도입해서 일반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기회를 늘리고 또 검사가 기소하기 전에 미국의 대배심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순진한 생각이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배심제도에 대한 논란을 다룰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배심 재판도 많은 문제가 있을뿐더러 운영 자체가 너무 비싸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형사재판은 유죄인정(plea bargain)을 통해 처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넷플릭스에는 유명한 배심재판을 다룬 시리즈가 두 개 올라와 있다. <American Man Hunt : O. J. Simpson>은 1994년 전처(前妻)와 그녀의 남자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미식 축구선수 출신 배우 O. J 심슨(O. J. Simpson 1947~2024)을 다룬 도큐먼트다. 당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릴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이 재판에서 심슨은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심슨이 범인임은 그 후 대체로 확인됐다. 영미법에선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오면 검찰은 더 이상 항소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건은 종결됐으나 그 후 이어진 민사재판을 계기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는 등 심슨이 범인이었다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O. J. 심슨 재판은 배심원 12명이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배심재판의 문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판사가 증거에 의해 재판을 하는 대륙법 형사재판이었다면 심슨은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또 다른 시리즈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클 피터슨(Michael Peterson 1943~) 재판을 다룬 도큐먼트 <계단(The Staircase)>이다. 2001년 12월, 듀크 대학이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소설가이며 작가인 마이클 피터슨의 부인 캐슬린이 자기 집 계단에서 굴러서 피를 많이 흘리고 사망한 사건으로, 검찰이 남편 마이클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기소한 사건이다. 마이클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 부인을 다급한 목소리로 구급 911로 신고했으나 캐슬린이 뒤쪽 머리에 열상(裂傷)을 입은 것을 보고 검찰은 마이클이 머리를 가격해서 계단에 밀어 떨어트려 부인을 죽게 했다고 보고 그를 기소했다. 캐슬린은 회사 임원이었기 때문에 재산을 노리고 죽였을 것이라는 추측기사가 나오는 등 대학도시 더램을 센세이션에 빠뜨렸다.

검찰은 직접증거를 갖고 있지 못했으나 노스캐롤라이나 주 수사국의 수사관이 당시 상황을 재현해서 유죄를 주장했고, 이어서 시건과 관계없는 마이클 피터슨의 신변에 관한 사실이 드러나서 배심원들은 유죄로 기울게 되며 2003년 10월에 피터슨은 종신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피터슨은 항소했으나 기각되었다. 그러나 그 후 결정적인 증언을 했던 주 정부 수사관이 다른 사건에서 증거를 조작했음이 드러나서 파면 당하고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17년 만에 무죄로 석방되자 2011년 주 대법원은 피터슨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했다. 8년 동안 감옥에서 지낸 피터슨은 보석으로 풀려서 자택에서 지내면서 재판을 준비해야 했으나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고 재판에 너무나 많은 돈을 소모한 피터슨은 검사와 협상으로 의도가 없는 살인(manslaughter, 악의가 없는 살인)으로 죄목을 낮추고 여러 가지 고려에서 재판 보다는 유죄 인정을 선택하는 알포드 유죄인정(Alford plea)으로 재판을 대체하고 이미 8년 동안 수형생활을 한 피터슨은 2012년 2월 석방된다. 이렇게 해서 잘 나가던 작가의 인생은 사법시스템에 의해 회복할 수 없게 망가지고 말았다.

마이클 피터슨은 경찰이 자기를 혐의자로 지목할 때부터 프랑스의 제작자에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 변호사 등 변호 팀에 대한 촬영을 허용했다. 이렇게 해서 2003년 재판부터 2011년 보석 석방과 2012년 석방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카메라에 담겼다. 피터슨을 대리한 데이비드 루돌프 변호사와 아버지를 굳건하게 지지한 세 딸과 아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마지막에 유죄평결을 가져온 재판을 주재했던 판사가 당시 자기가 배심을 잘못 이끌어갔다고 말하면서 이 시리즈는 끝이 난다. 마이클 피터슨과 데이비드 루돌프 변호사가 재판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워낙 길어서 모두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평균인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재판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계단에 굴러 떨어지면서 뒷머리에 왜 열상(찢어진 상처)이 났느냐에 대해선, 그 지역에 많은 큰 올빼미가 캐슬린의 머리를 공격하자 이에 놀란 캐슬린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다가 실족했을 것이라 한다. 뒤늦게 캐슬린의 상처에서 미세한 새털이 나왔다.)

O. J. 심슨 사건과 마이클 피터슨 사건은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으나 분명한 점은 살인자 심슨은 무죄로 풀려났고 아무런 죄가 없는 피터슨은 유죄판결을 받고 8년간 수형생활을 하고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배심재판에 의해....... 평균적 사람들은 사실과 증거 보다는 정서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한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