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부 심볼. 트럼프가 미국 교육부와 주택도시개발부를 폐지하려고 한다. 배경으로 각 주정부에서 할 기능을 중앙 부처에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공립학교 교사 노조로 인해 공교육이 망가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미국 교육부 홈페이지

트럼프 대통령이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교육부는 주택도시개발부(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 HUD)와 더불어서 공화당과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없애야 한다고 보는 각료급 부서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로널드 레이건은 두 부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으나 상하원이 모두 민주당의 지배하에 있어서 없애지 못했다. 레이건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상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레이건이 하지 못한 교육부 폐쇄를 트럼프가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공공주택 건설을 지원하는 주택도시개발부(HUD)는 어떻게 될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교육부는 카터 대통령이 만들었고 주택도시개발부는 존슨 대통령이 만들었는데, 공화당은 두 부처 창설에 모두 반대했다. 교육과 주택은 주 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할 일이지 연방정부가 관여할 분야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뿌리는 1953년에 생긴 HEW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방차원에서 사회보장을 도입함에 따라 이를 관장할 연방사회보장국(The Federal Security Agency : FSA)이 1939년에 설립됐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의회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서 보건교육복지부(Dp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 HEW)를 각료급 부서로 만들어서 1953년에 발족했다. HEW는 연방사회보장국을 흡수하고 20세기 초에 발족한 식품의약국(FDA)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연방예산으로 유지하는 흑인대학인 하워드 대학(Howard University), 그리고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학교를 직접 관장하도록 했다. 따라서 HEW에서 교육의 비중은 가장 적었다.

1950년대까지 교육은 연방정부 소관이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기 들어서 공립학교 교사들이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고 1960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존 F. 케네디는 자기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겠으며 교사들의 권익을 증진시키겠다고 약속해서 거대한 공립학교 교사조직인 전국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 NEA)의 지지를 얻었다.

케네디는 자신이 암살되기 사흘 전에 백악관에서 NEA 간부들을 초청해서 연설을 할 정도로 NEA와 가까웠다. 케네디에 힘입어서 NEA는 단체협상과 파업을 할 수 있는 전국적 노조로 탈바꿈했다. NEA는 미국 최대의 노조연합이 됐고 이로 인해 아무리 무능한 공립학교 교사라도 해고를 할 수 없게 됐다.

윌리엄 버클리 등 보수주의자들은 NEA 때문에 미국의 공립학교가 병들었다고 주장해서 큰 반향을 얻었다. 비싼 사립학교를 다녀서 공립학교를 알지 못하는 케네디는 정치적 목적으로 NEA를 지지했으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공립학교를 다닌 리차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은 공립학교 교사들이 노조 운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복지국가를 지향한 린든 존슨 대통령 덕분에 1960년대에 연방정부 예산 중 복지, 교육, 주택 분야가 대폭 증가했다.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을 마무리하고 재선에 성공한 후 복지 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워터게이트 때문에 도중에 사퇴하고 말았다. 1976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가 된 지미 카터는 교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연방정부에 교육부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1979년 5월, 보건교육복지부(HEW)는 교육부와 보건휴먼서비스부(Dept of Health and Human Service)로 분리됐고 이른바 교육전문가들이 새로 생긴 교육부를 장악했다.

이듬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로널드 레이건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교육부와 주택도시개발부를 없애 버리겠다고 공약했지만 당시는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어서 민주당 대통령이 만든 두 부처를 폐지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레이건 대통령은 두 각료급 부서의 사업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렸다.

레이건 대통령은 NEA의 워싱턴 파견소처럼 되어 버린 교육부를 폐지하거나 혁파하기 위해 전통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공화당 철학에 부응하는 테릴 벨(Terrel Bell 1921~1996)을 교육부장관으로 임명했다. 테릴 벨은 미국 교육이 하향 평준화되어가고 있음을 경고한 유명한 보고서 <A Nation at Risk>를 펴냈다. 레이건 1기가 끝나고 사임한 테릴 벨은 유타대학 교수를 지냈다. 레이건 대통령은 윌리엄 베넷(William Bennett 1943~)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베넷은 정치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으면서 하버드 로스쿨을 나오고 보스턴 대학 교수를 지내다가 레이건에 의해 교육부 산하의 인문학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 NEH) 이사장으로 발탁됐는데, 그는 미국의 인문학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 보고서(‘To Reclaim a Legacy’)를 내서 유명해졌다.

한편 레이건 대통령은 자기가 없애버리겠다고 약속한 주택개발부 장관에 연방검사를 지낸 새무엘 피어스(Samuel Pierce 1922~2000)를 임명했다. 피어스는 레이건 행정부 각료급에서 유일한 흑인이었다. 주택도시개발부는 필요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한 레이건은 피어스 장관을 만날 이유가 없었고 부처 예산은 대폭 삭감돼서 장관은 할 일이 없었다.

피어스 장관이 전국 시장회의를 열고 레이건 대통령을 초청한 적이 있는데. 레이건은 피어스 장관이 그 회의에 참석한 시장인줄 알고 “Hi, Mayor"라고 불러서 화제가 됐다. 대통령이 장관을 못 알아 본 것이다. 특별하게 할 일이 없었던 피어스 장관은 레이건 임기 8년 동안 장관을 지내서 레이건 각료 중 유일하게 8년 동안 장관을 한 기록을 세웠다. 출근해도 할 일이 별로 없었던 피어스 장관은 장관실에서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려가면서 TV를 보면서 8년 동안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우리와 달리 미국의 초중등 공립학교는 지방정부 소관이고 주립대학은 주 정부 소관이고 사립학교와 사립대학은 스스로 알아서 운영하기 때문에 연방정부는 교육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그래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교육부와 NEA가 공교육을 망쳐서 미국 학생들이 멍청해 졌다고 본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