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젠슨 황이 무심코 던진 돌과 파랗게 질린 서학개미들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5.01.09 10:46 의견 0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사진=엔비디아

간밤 미국 증시에서 우리나라 서학개미들의 최애 종목들인 양자컴퓨터 관련주들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인으로서 양자컴퓨터 관련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인 김정상 듀크대학교 교수가 창업한 아이온큐가 39% 하락한 데 이어, 최근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이면서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인 리게티컴퓨팅이 -45.41%, 그 외 퀀텀컴퓨팅 -43.34%, D-웨이브퀀텀 -36.13% 등 지난 1년 간 몇배에서 몇십배 오른 양자컴퓨터 종목 주가가 하루 밤새 파랗게 질렸다.

원인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가전·IT전시회(CES) 첫날 미국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이 기조연설이나 기자간담회가 아닌 애널리스트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한 발언 때문이었다.

이번 CES에는 처음으로 양자컴퓨터 분야에 대한 주제가 포함됐다. 애널리스트들이나 관련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질문을 누구에게나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리포트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젠슨 황은 이 질문에 대해 “매우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는 데 15년이 걸린다고 한다면 매우 이른 편이고 30년이라면 늦은 시점일 것이니 사람들은 20년 정도면 믿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다. 그의 말대로면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최소 15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기술적인 이유는 없이 막연한 본인의 생각을 얘기한 것뿐인데, 주식시장은 시퍼렇게 높은 파도를 만들어 관련 종목을 덮쳤다. 젠슨 황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많은 서학개미들이 중상을 입은 꼴이다.

양자컴퓨터 종목이 하룻밤 새 폭락한 데는 분명 젠슨 황이 찬물을 끼얹은 것이 도화선이 됐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동안 너무 많이 오른 것이 원인일 수 있고, 그동안도 이 종목들은 지나칠 정도로 변동성을 보여왔기 때문에 울고 싶은데 뺨 맞은 듯 젠슨 황의 말에 반응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양자컴퓨터 주식에 대한 우리나라 서학개미들의 투자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이번 폭락 사태는 주로 한국 투자자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번달 7일 기준으로 한국 투자자들이 지난 한달동안 매수한 미국 주식을 보면, 1위기 리게티컴퓨팅으로 142만5000달러, 5위가 아이온큐 86만3000달러다.

우량주인 2위 팔란티어 106만2000달러, 3위 엔비디아 103만9000달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주식보유잔량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6일 기준 아이온큐 3230만달러, 리게티컴퓨팅 756만달러다. 우량주인 알파벳 2610만달러, 팔란티어 2331만달러, 아마존 1951만달러, 브로드컴 1787만달러와 역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온큐는 시가총액의 30% 이상을 한국인이 들고있다.

그렇다면 이번 젠슨 황의 양자컴퓨터에 대한 발언에 대해 과연 어느정도 신뢰도가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AI칩 제작 및 공급의 거의 독점적인 위치에 있는 기업이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장착한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가지고 AI를 빠르게 학습시켜 클라우드 시장을 독점적으로 장악한 덕분에 영업이익률 50%를 넘기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양자컴퓨터가 개발이 돼 상용화된다면, 엔비디아가 가지고 있는 GPU의 속도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엄밀히 말하면 엔비디아와 양자컴퓨터는 경쟁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 되는 순간 엔비디아의 GPU는 소용이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AI시장에 양자컴퓨팅 기술이 탑재되면서 엄청난 혁신이 일어나고, 껍데기뿐만이 아닌 진정한 휴머노이드가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엔비디아가 이번 CES에서 들고나온 로봇 기술과 연계될 경우 양자컴퓨팅 기술이 젠슨 황에게는 또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단순 역학관계 속에서는 엔비디아의 독점구도를 깨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난달 구글이 발표한 초고성능 양자컴퓨터인 ‘윌로우’ 실험 성공이 젠슨 황에게는 달가운 뉴스가 아닐 수 있다. 현재 엔비디아는 양자컴퓨팅 기술 연구에서 후발주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컴퓨팅 기술의 빠른 진화가 젠슨 황에게는 굿뉴스라기 보다 배드뉴스일 수 있다.

그런 배경으로 젠슨 황은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에 그저 의례적으로 답변한 것일 수 있는데, 워낙 변동성이 큰 종목들인데다 단기간에 급등하다 보니 주가들이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젠슨 황의 양자컴퓨터에 대한 발언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또하나 있다. 젠슨 황은 CES 기조연설에서 신제품 그래픽처리장치(GPU)인 RTX 50시리즈에 마이크론의 그래픽 더블데이터레이트 7세대(GDDR7)를 썼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도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7일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황 CEO는 “삼성, SK도 그래픽용 메모리를 만드는가?”라고 되묻고는 “모르겠다, 별 이유가 아닐 거다”라면서 하루만에 말을 바꿨다.

처음부터 납품사인 마이크론을 거론한 것도 경솔했지만, 삼성과 SK가 납품을 하고 있는지 모른척 한 것 역시 순수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양자컴퓨터에 대한 그의 발언에도 신뢰가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 기회에 이들 주식에 대한 투자 자세를 다듬을 필요가 있고, 투기적이 아닌 투자적인 자세를 갖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들 주식은 평소에도 작은 뉴스에 대해 한번에 10% 이상씩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변동성이 심한 종목들이다. 그만큼 불안정성이 높은 주식들인 만큼 단기간의 투기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보유 비중도 적정하게 가져가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지난 1년간 리게티와 디웨이브 주가가 각각 1400%와 800% 이상 폭등했다고는 하지만, 현재 손실구간에 있는 투자자가 4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만큼 단기 투자로 인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주식시장 전체적으로 볼 때 지난 한 해 기술주 중심으로 지나치게 올라, 이에 대한 경계감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트럼프2.0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글로벌 무역질서와 산업계 재편으로 상당한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나친 집착은 화를 부르고, 누군가 던진 돌에 맞을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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