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가 지난해 12월 기준 59년 간 누계로 1조달러를 초과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화로 1500조원이다. 대단한 숫자이지만, 숫자만큼이나 이면에는 많은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있다.
현대건설이 1965년 11월 태국 남부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522만달러에 수주하면서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공사가 시작된 지 59년 만에 1조달러라는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요즘은 해외건설 공사가 대부분 플랜트 공사여서 한국의 많은 인력이 나가지 않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건설공사 대부분이 토목과 건축이었고, 특히 도로 항만 등 토목공사 비중이 많아 해외건설은 국내 현장 근로자들의 중요한 달러 수입원이었다.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나선 것이 1968년이니까, 현대건설은 태국 고속도로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양대 축은 건설과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내수를 이끌었지만 건설은 해외건설을 통한 달러박스였다. 중동에서 벌어들이는 달러로 그룹을 확장시켜나가 중공업, 조선 등 중화학 공업 분야로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갔다.
대우건설은 1976년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하면서 남미 에콰도르의 댐 공사를 시작으로 해외건설 공사 수주에 집중했는데, 1978년 리비아 가리니우스 의과대학을 비롯해 7000세대 아파트, 5000세대 아파트 등을 수주하면서 선수금으로 받은 달러를 바탕으로 조선업과 중공업을 시작했다. 특히 대우조선 창업의 밑천으로 이들 공사대금이 쓰여졌다.
대한민국 해외건설 역사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공사는 리비아의 대수로공사였다. 이 대수로공사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리비아 지하에 엄청난 지하호수층이 있는 것을 발견해 이 물을 끌어올려 리비아 전역으로 보내는 사업이었다.
1, 2단계로 진행됐는데, 모두 동아건설이 수주했다. 1단계는 1984년에 시작했는데 송수관 길이만 1800km였고 공사금액은 당시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38억 달러였다. 2단계 역시 1730km 길이의 송수관 공사였는데, 공사 구간의 암반 등 난공사로 인해 공사금액은 64억달러로 올라갔다. 역시 세계 최고 기록의 공사금액이었다.
이 공사로 인해 리비아는 경작지 비중이 2% 이하에서 10% 이상으로 늘어나게 됐다.
대한민국 동아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의 땀으로 일궈낸 리비아에서의 성과로 당시 리비아의 지도자인 가다피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사막 한가운데 있는 한국 건설현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가다피는 젊은 나이에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이유로 정적이 많아 항상 암살 위협에 노출돼있어서 일정한 거처가 없이 사막에 은거했는데, 한국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한국 건설사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방문을 했던 것이다.
지난 59년의 해외 건설 역사 속에 수 많은 납치사건도 일어났다.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필리핀 등 정정이 불안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납치사건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큰 사고 없이 해결되곤 했다.
고용효과도 엄청났다. 한창 때 현대건설, 대우건설, 동아건설 등의 해외현장에서는 한 회사당 수만명의 현장근로자를 쓰면서 엄청난 숫자의 한국 건설노동자들이 해외건설현장에서 달러를 벌어들였다. 1978년 10만명을 넘어선 해외 현장 파견 근로자는 80년 대 초 20만명을 넘겼다.
1970낸대 초반 국내 산업화 기초를 닦았던 달러의 85%가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벌어온 오일달러였다.
우리나라 건설사들 간의 과당경쟁으로 많은 건설사가 중동에서 철수하고 망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사우디, 쿠웨이트 등 중동에 진출한 한국 건설사들 간 덤핑경쟁으로 결국 삼환기업, 남광토건, 삼부토건, 한신공영, 삼호 등등 여러 건설사들이 국내로 철수했고, 이어진 경영악화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근면 성실하면서 실력있는 근로자의 힘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고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건설 수주를 이어갔다.
2017년에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가 공동으로 수주한 세계 최장 길이의 튀르키에 타나칼레대교라든지, 2004년 삼성물산이 수주한 세계 최고 높이 건물인 UAE 두바이 부르즈칼리파 등 세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시공물들이 탄생했다. 2010년에는 한국전력이 UAE에서 바라카원자력발전소를 191억달러에 수주해 글로벌 원자력발전소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국내 인력의 임금경쟁력이 떨어지고, 토목이나 건축 등 일반적인 공사는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가격경쟁력으로 밀리면서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석유화학 등 플랜트 분야가 건설 수출의 주역으로 들어앉았다.
그러나 공사가 어렵고 까다로워진 만큼 수익성은 크게 떨어졌다.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등 일괄로 공사를 진행하는 턴키베이스 공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공사비 상당부분은 기기부분이 차지하고 있고, 하자 확률이 높아 자칫 공기지체 및 공사하자로 인한 초과비용으로 손해를 보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각 건설사들이 리스크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를 기울이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들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키워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장기적인 청사진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즉 관련 첨단 분야 연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나, 대학과 연계한 인재 양성 등 국가차원의 경쟁력 제고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거 건설사들이 벌어들여온 달러로 오늘날 우리나라 산업 기반을 만든 만큼,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역량 강화에 앞장서줄 차례다.
건설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분야다. 아무것도 없는 땅이나 지하나 물 속에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설계를 해서 구축물을 만들어 인간에게 쓰이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기술력이다. 그 기술력이 바로 안전하고도 연결이 된다.
그동안 건설사들의 땀으로 1조달러를 벌어들였다면, 이제는 국가의 힘으로 더 빠른 기간 내에 1조달러를 벌어들일 차례다.
현재 국내 건설사들이 겪고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해외건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가 전체가 나설 때다.
이기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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